동서식품 '50:50 합작' 한계로 수출 불가능, 김상헌 김석수 '성장 돌파구 마련' 동서 주주 요구 귀 막아
이승열 기자 wanggo@c-journal.co.kr2025-08-05 08:32:44
김상헌 동서 고문(왼쪽)과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오른쪽) 등 동서식품 오너 일가와 경영진은 회사의 중장기 성장전략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동서식품은 지주회사격인 동서와 미국 기업 몬델리즈 인터내셔널이 절반씩 지분을 나눠가진 합작사 형태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몬델리즈 인터내셔널은 1985년 제너럴 푸즈를 인수한 크래프트 푸즈의 글로벌 사업부문이 분사한 회사다.
이 같은 지배구조를 갖게 된 것은 동서식품의 성장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동서식품은 1968년 설립됐다. 이어 1970년 미국의 제너럴 푸즈와 기술 도입 및 합작사업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커피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몇 번의 지분 변동을 거쳐 현재의 50:50 구조가 정착됐다.
1974년 동서식품을 인수한 김재명 명예회장은 1976년 동서(당시 아폴로보온병)를 연이어 인수했다. 이후 지분 이동을 통해 동서를 지배구조 최상단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동서식품 지분 50%도 동서가 보유하게 된다.
이후 동서식품은 한국 커피믹스 시장의 85%를 장악한 알짜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동서식품은 지배구조가 발목을 잡아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하지 못하는 한계가 뚜렷한 기업이 됐다.
◆ 동서식품 지배구조의 한계
동서식품은 동서와 몬델리즈 양쪽에서 5명씩 파견한 총 10명의 사내이사로 이사회를 구성한다. 대표이사도 양쪽에서 1명씩 선임해 공동대표를 맡는다. 양쪽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모든 의사결정을 합의해서 진행하는 구조다.
감사 역시 양쪽이 한 사람씩 파견한다. 현재 동서식품의 동서 쪽 감사는 오너 3세인 김종희 동서 부사장이 맡고 있다.
동서식품은 대표이사는 전문경영인이 맡되, 감사는 오너일가 구성원이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김 부사장 전에는 2018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던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이 2023년까지 감사로 일했다.
동서식품은 순이익 중 일부를 배당을 통해 동서와 몬델리즈에 지급한다. 2024년의 경우 양쪽은 순이익 1832억 원 중 총 1160억 원을 절반씩 나눠가졌다.
다만 동서식품의 핵심 브랜드인 ‘맥심’의 국외 상표권과 판권은 몬델리즈가 소유하고 있다. 애초 몬델리즈와 맺은 계약에 동서식품은 국내 판매 권한만 갖는다는 조항이 삽입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계 때문에 동서식품은 해외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내 식품기업들이 한류 열풍을 타고 해외사업을 크게 확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서식품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이 포화상태가 돼 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로 동서식품은 2011년 매출 1조5천억 원을 돌파한 후 2022년까지 10여 년간 매출 규모가 1조5천억∼1조6천억 원대에서 정체돼 있었다.
이 때문에 몬델리즈가 커피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 때마다 동서식품의 모기업 동서의 주가가 크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최근 사례를 보면 2024년 10월22일 동서 주가(종가 기준)는 전날 1만9470원보다 5830원(29.94%) 오른 2만5300원을 기록하며 3년 내 최고가를 찍었다.
당시 몬델리즈가 글로벌 2위 커피회사인 JDE피츠 지분(17.6%)을 독일 회사에 매각한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실제로 이 거래를 통해 몬델리즈가 관여하는 커피 사업은 동서식품 지분을 제외하고는 없어졌다. 이는 몬델리즈 산하에서 커피 사업을 하는 기업이 동서식품뿐이어서 이해상충 문제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서식품이 커피믹스 수출계획이 없고 몬델리즈와 지분구조도 변동이 없다고 밝히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2021년 2월에도 당시 몬델리즈의 모회사인 크래프트가 동서식품 지분을 처분한다는 소문이 돌아 동서의 주가가 폭등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투자가 제한적인 탓에 동서식품은 현금을 꾸준히 곳간에 쌓아두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합한 현금자산은 8385억 원, 이익잉여금은 1조1194억 원에 달한다.
문제는 몬델리즈 쪽이 안정적인 수입원인 동서식품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동서식품이 중장기 성장전략을 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동서식품은 언제나 국내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왔다. 2023년 출시한 캡슐커피 브랜드 ‘카누 바리스타’가 대표적이다. 카누 바리스타는 2023년 동서식품의 매출액이 1조7천억 원대로 상승하는 데 기여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씨저널과 통화에서 “동서식품의 지분구조는 달라진 게 없고 별도의 수출계획도 없다”면서 “신사업으로 카누 바리스타 시장 확대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 동서식품 오너일가는 성장 의지 있나
하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맥심 브랜드 해외 상표권과 판권 일부 또는 전부를 동서식품이 인수하고 해외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해외 맥심 브랜드 소유관계가 국가마다 차이가 있어 단칼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위해서는 협상 테이블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상헌 동서 고문과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 등 오너일가와 경영진은 해외수출 계획을 계속 부정하면서 이렇다 할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내 사업에서 벌어다 주는 이익에 만족해 장기적인 회사 성장전략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이 같은 태도를 두고 일각에서는 몬델리즈와의 계약 위반에 따른 법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 추후 협상력 약화 등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