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윤 이랜드리테일 대표가 올해 4월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황성윤 이랜드리테일 대표가 녹록치 않은 시장 환경에서 ‘비상경영’에 나섰다.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몸집을 줄여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채무 청산으로 재무구조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랜드리테일은 이랜드그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로 사업회사 가운 매출이 가장 큰 계열사다. 아울렛과 백화점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사실상 이랜드 그룹을 지탱하는 ‘기둥’이 이랜드리테일인 셈이다.
◆ 오프라인 위기 심화, 황성윤 강도 높은 구조 개혁 단행
문제는 이런 이랜드리테일의 실적이 최근 경쟁 심화와 소비경기 둔화로 내림세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력사업인 오프라인 유통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수익성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아울렛은 접근성과 가성비를 경쟁력으로 삼는 오프라인 유통채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가성비를 챙길 수 있는 온라인 유통채널이 늘고 있다.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2022년부터 오름세를 유지하며 지난해 259조4319억 원까지 성장했다.
이와 더불어 구매수단이 다양해지고 시공간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점도 매출 감소의 요인으로 꼽힌다.
이랜드리테일은 유통채널 다변화와 팩토리아울렛 영역 개척 등 다양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지만 매출 감소세는 여전하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1조5649억 원, 영업이익은 300억 원으로 2023년보다 각각 0.4%, 41.9% 줄었다. 2019년 매출 2조1천억 원을 기록한 뒤 5년 사이 26%가 감소한 셈이다.
이랜드리테일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업계 전반이 어려움을 겪은 상황에서 구조 변화로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며 “이랜드글로벌과 이랜드킴스클럽을 다시 합병하는 것도 경영 효율화에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금 유통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계열사에 재무적 지원을 이어오며 차입금이 늘고 있는 데다 부채비율도 지난해보다 증가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에는 부채비율 114.57%, 유동비율 37.19%를 기록했다.
단기차입금과 유동성부채 부담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부채비율은 2.91%포인트 늘었고, 유동비율은 5.34%포인트 줄었다.
장기적 채무위험이 커진데다 단기적 자금 부족으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도 높아진 셈이다.
이 와중에도 계열사에 대한 재무적 지원으로 자금 부담은 계속되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으로 계열사에 848억 원의 대여금을 제공했다.
아직까지 대여금의 비중은 얼마 되지 않지만 계열사의 부실이 이랜드리테일로 이전되는 트리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황 대표의 두 번째 과제는 ‘군살빼기’다. 이랜드리테일은 2023년부터 비핵심 사업을 정리해 온 데 이어 9월에는 종속회사 2개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황 대표는 재무 개선과 군살빼기로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첫 번째 과제인 ‘재무 개선’을 위해서는 부동산을 담보로 자금 마련에 나섰다.
이랜드리테일은 7월28일 2년 뒤 상환 조건으로 400억 원 규모의 ‘무기명식 이권부 담보부 사채’를 발행했다.
무기명식 이권부 담보부 사채는 신용이 아닌 부동산을 담보로 발행되는 사채다. 신용등급이 부동산 가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신용이 낮은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유리하다.
정기적으로 이자가 지급되고 익명의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도 이 사채의 장점 가운데 하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이랜드리테일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까지 낮춰 잡았지만 이번 사채의 담보에는 AAA(안정적) 등급을 매겼다.
이랜드리테일 관계자는 씨저널과의 통화에서 “이번 사채 발행의 목적은 차환이다”며 말을 아꼈지만 황 대표의 ‘자금 마련’ 자구책을 엿볼 수 있는 행보다.
황 대표의 두 번째 과제는 ‘군살빼기’다. 이랜드리테일은 2023년부터 비핵심 사업을 정리해 온 데 이어 9월에는 종속회사 2개(이랜드킴스클럽, 이랜드글로벌)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이 두 회사는 2022년 전문성 강화를 위해 이랜드리테일에서 물적분할해 설립됐다.
하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했고 황 대표는 분할 3년 만에 이 회사들을 이랜드리테일로 되돌린다는 결정을 내렸다.
◆ 황성윤 ‘비상경영’의 다른 이름 ‘인사명령’, 노동자에게 전가된 경영 위기
“직접 고용한 직원들이 구조조정(해고)되는 걸 막기 위해 도급인력 계약을 해지했다.”
이랜드리테일 관계자는 경영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물류센터를 비롯한 현장을 직접 운영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직원의 인사이동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황성윤 대표가 최근 ‘비상경영’을 위해 내린 인사명령이 이랜드리테일 노사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4월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면서 비용절감을 위해 카트 수거와 물류, 주차, 보안 등의 도급계약을 종료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 직원 일부가 비정규직이 담당하던 업무를 맡게 됐지만 노동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그동안의 직무역량과는 무관한 인력배치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노조에 따르면 10년 이상 앵커나 인사, 검수부서 등에서 일했던 전문 인력마저 계산대 결제업무에 배치됐다.
실무협의에서는 ‘물류센터가 아니면 계산대 인력으로 가야한다’는 한정적 선택지를 주고 동의를 강요했고 개인사정에 대해서는 ‘모두가 개인사정이 있다’며 묵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노조는 “인력이동 과정에서 노사 실무협의가 열렸으나 실상은 통보에 불과했다”며 “사정을 말하고 전보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들도 결론적으로 발령이 났다”고 말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씨저널과 통화에서 “비상경영 사태에서 경영자는 구성원들에게 먼저 사과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며 “기존 일과 전혀 다른 분야로 인력배치를 하는 건 그만두라는 얘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인사명령은 원칙적으로 회사의 권한이지만 무제한 재량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례에서는 포괄적 동의가 있더라도 인사이동의 필요성과 합리성, 근로자의 편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당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판 87다18172에 따르면 전직처분이 정당한 인사권 범위 내에 속하는지 여부는 업무상 필요성과 근로자 불이익 비교형량, 근로자와의 협의 등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쳐 결정되어야 한다.
이랜드리테일 관계자는 “(관리직 일부를 물류센터와 주차, 보안 부서로 전보하는 과정에서) 미팅이 이뤄졌고 전보가 어려운 사정이 있는 직원들은 다른 곳으로 발령을 냈다”며 문제가 없는 인사이동이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이 같은 상황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연봉동결, 복지포인트 미지급 등의 불이익도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적 근거를 떠나서도 경영위기 때마다 ‘인력감축’을 수단삼아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은 ‘지속가능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국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기준인 GRI(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에서는 근로자를 단순 고용자가 아닌 ‘중요 이해관계자’로, 비용이 아닌 ‘자본’으로 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은 28일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을 두고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만드는 것이 지속가능한 진짜 성장으로 가는 길”이라며 “정부도 대화의 길을 열겠다”고 말했다. 안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