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그룹에서 '숙부-조카 경영체제'가 안착할 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 GC녹십자 >
[씨저널] GC녹십자그룹(녹십자그룹)의 ‘숙부-조카 경영체제’가 당분간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고 허영섭 전 회장의 직계 장남인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이 지주회사인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정리하면서 경영에서 좀 더 멀어지는 모습을 더욱 구체화해서다.
녹십자그룹은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과 고 허영섭 녹십자 전 회장의 아들들인 허은철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및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의 이른바 ‘숙부-조카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와 지난해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은 수십 차례에 걸쳐 녹십자홀딩스 지분 14만7900주를 장내 매도해 25억 원 규모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이에 따라 허 전 부사장의 녹십자홀딩스 지분은 2022년 9월 초 31만485주(0.66%)에서 2025년 6월 기준 2만 주(0.04%)로 줄었다.
◆ 고 허영섭 전 회장의 사망으로 발생한 ‘유언장 다툼’
녹십자그룹에서 ‘숙부-조카 경영체제’가 안착할 때까지 우여곡절은 많았다.
허영섭 전 회장이 2009년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동생 허일섭 회장이 경영권의 바통을 이어받게 됐지만 허영섭 전 회장 일가에서는 유언장으로 인해 잡음이 컸다.
허영섭 전 회장은 2009년 11월 사망하면서 남긴 유언장에 자신의 녹십자홀딩스 주식 56만주(액면분할 전) 가운데 30만 주를 회사 관련 공익재단에, 나머지 26만 주를 배우자 정인애씨와 차남 허은철 사장, 3남 허용준 사장에게 남기겠다고 적었다. 장남 허성수 전 부사장을 배제한 것이다.
허성수 전 부사장은 유언이 어머니 정인애씨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2009년 12월 소송을 제기해 이른바 ‘모자의 난’이 시작됐다.
허 전 부사장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아버지 허영섭 전 회장의 뜻과 달리 어머니 주도로 작성된 유언장대로 집행이 이뤄져서는 안된다”며 유언효력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진 유언 관련 소송에서 허 전 부사장은 2013년 최종적으로 패소했고, 어머니 정인애씨는 2014년 2월까지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모두 매도했다.
당시 제약업계에서는 어머니 정인애씨가 유산 분쟁의 앙금을 털고 향후 벌어질 수 있는 경영권 갈등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허성수 전 부사장은 아버지 허영섭 전 회장의 유언장에서 배재된 것을 문제 삼아 2014년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이란 상속인이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할 몫(유류분)을 침해받았을 때 다른 상속인에게 부족한 부분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일컫는다.
허 전 부사장은 당시 아버지의 유언으로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받았던 공익재단 목암연구소와 미래나눔재단 등으로부터 녹십자홀딩스 주식 46만3551주를 돌려받았고 그 뒤로 장내에서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2016년에는 1.07%까지 늘리기도 한 바 있다.
허 전 부사장이 아버지 허영섭 전 회장에게 지분을 받지 못했던 이유와 관련해서는 여러 추측이 많지만 확실히 확인된 내용은 거의 없다.
다만 허 전 부사장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05년부터 녹십자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2007년 돌연 회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아버지 허영섭 전 회장에게 경영총괄직 자리를 요구했다가 경영능력을 이유로 거절당하면서 부자 관계가 악화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 한일시멘트 지분 매각과 남아있는 연결고리의 영향력
녹십자그룹은 한일시멘트그룹과 뿌리를 같이하는 기업집단이다.
한일시멘트 창업주 고 허채경 회장이 한일시멘트를 세운 뒤 1969년 수도미생물약품(현재의 녹십자)을 인수하면서 제약업에도 손을 뻗치면서 한일시멘트그룹과 맥을 같이 하게 됐다.
허채경 회장의 아들 허영섭 전 회장이 1980년 녹십자 대표이사를 거쳐 1992년 회장에 올라 현재의 녹십자를 안정적 궤도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5년 8월 고 허채경 회장이 향년 77세로 별세하면서 녹십자그룹에서는 아들인 허영섭 전 회장과 허일섭 회장의 이른바 ‘형제경영’이 본격화됐다.
재계에서는 녹십자그룹과 한일시멘트그룹이 계열분리를 이룬 시점을 허채경 회장이 별세했던 1995년 8월 무렵으로 보고 있다.
녹십자그룹은 이후 2001년 지주회사에 대한 사업목적을 정기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아 생명공학 및 헬스케어 관련 기업을 자회사로 둔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녹십자그룹과 녹십자그룹 오너일가는 2018년부터 한일시멘트 관련 지분을 처분해 사업재원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십자홀딩스는 한일시멘트(한일홀딩스와 한일시멘트) 지분을 꾸준히 처분했으며, 허일섭 회장도 한일시멘트 관련 지분을 매도해왔다.
2025년 6월 기준 허일섭 회장은 한일홀딩스 지분을 0.41%, 한일시멘트 지분을 0.27% 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녹십자그룹 오너일가가 한일시멘트 쪽에 가지고 있는 지분은 줄었지만, 상대적으로 한일시멘트에 있는 녹십자그룹의 방계 친척들은 녹십자홀딩스의 지분을 잘게 나누어 보유하고 있다.
한일시멘트 창업주 고 허채경 회장의 장남 허정섭 전 한일시멘트 회장, 3남 허동섭 전 한일시멘트 회장, 4남 허남섭 전 한일시멘트 회장 일가 및 장녀 허미경 씨 등 방계 친인척은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여전히 약 8% 정도 들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지분이 녹십자그룹이 향후 이른바 ‘사촌경영’으로 넘어갈 때 경영권의 향배에 일정부분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시선을 제기하기도 한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