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그룹의 '숙부-조카 경영체제'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면서 재계에서는 다음 '사촌경영 체제'로 변화할 때 경영권 분쟁이 없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GC녹십자그룹(녹십자그룹)이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과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및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사장 중심의 이른바 '숙부-조카 경영체제'에서 '사촌경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허일섭 회장이 올해 71세로 고령인 가운데 지난해 말 진행된 '2025년도 정기 임원인사'에서 허 회장의 장남인 허진성 전무가 경영관리본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지주사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기 때문이다.
허진성 전무가 맡은 경영관리본부장 자리는 과거 허용준 사장이 대표에 오르기 직전 맡았던 핵심 요직으로 그룹의 투자 및 재무 회계를 총괄하는 자리다.
허진성 전무가 녹십자그룹의 핵심적 자리를 맡게 되자 재계에서는 사촌경영이 안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지주회사 녹십자홀딩스 지분구조에 잠재된 경영권 분쟁의 가능성
허일섭 회장 일가와 고 허영섭 회장 일가는 그동안 녹십자그룹의 계열사를 분리해서 경영해오지 않았고 녹십자그룹의 후계구도를 뚜렷하게 정해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재계에서는 녹십자그룹에서 경영권 분쟁을 점치는 의견이 나온다.
녹십자홀딩스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허일섭 회장 일가의 지분은 모두 14.38%에 달한다. 허일섭 회장이 최대주주로 12.29%를 쥐고 있고, 허 회장의 배우자 최영아씨(0.32%) 및 장남 허진성(0.77%)씨와 차남 허진훈(0.72%)씨, 딸 허진영(0.27%)씨가 지분을 조금씩 들고 있는 구조다.
반면 고 허영섭 회장 계열 일가인 허은철 대표와 허용준 대표의 지분은 각각 2.68%, 2.91%로 허일섭 회장 일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허은철 대표와 허용준 대표의 지분이 낮은 것은 고 허영섭 회장이 지니고 있던 주식 대부분을 생전에 연구재단과 장학재단에 기부를 통해 넘겼기 때문이다.
향후 녹십자그룹의 경영상황에서 결정적 변수는 이 연구재단과 장학재단들의 의결권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목암생명과학연구소 8.72%, 미래나눔재단 4.38%, 목암과학장학재단 2.1%를 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정거래법 제25조에 따르면 공익법인은 국내 상장법인의 주주총회에서 △임원의 선임 또는 해임 △정관 변경 △합병 및 주요 영업자산의 양도와 관련된 결의에서 특수관계인 합산 15%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목암생명과학연구소의 대표는 허일섭 회장이지만 허은철 사장이 이사로 들어가 있으며, 미래나눔재단은 허용준 대표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목암과학장학재단의 대표이사는 허은철 사장으로 전해진다.
공익재단뿐만 아니라 녹십자그룹과 뿌리를 같이하는 한일시멘트그룹을 비롯해 기타 방계가족의 합산지분 약 8.78%와 국민연금이 들고 있는 6.04%도 변수로 꼽힌다.
◆ 사촌경영 모범사례 GS 따라가나
재계에서는 녹십자그룹이 사촌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GS그룹과 같은 길을 걸을지 주목한다.
GS그룹은 2세대 형제 가문들이 지주회사 지분을 일정 비율로 분배해 소유하며, 견고한 가족회의 시스템을 바탕으로 핵심 경영 의사결정을 내리는 독특한 지배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GS그룹의 총수(동일인) 역할은 셋째 허준구 가문 출신인 허태수 회장이 담당하고 있다.
GS그룹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 가문에 절대적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주회사 지분을 한곳에 몰아주지 않고 각 가문에 고르게 분산시키는 균형 배분 시스템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에 따라 그룹의 중요한 경영 판단은 각 가문 사이 협의 과정을 거쳐 GS 지주회사 체제 하에서 조정되고 있으며, 이같은 가문 간 균형 시스템이 세대를 거쳐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실현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GS 오너가 내부에서는 가문 간 결속을 우선시하는 관례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가족회의에서 합의에 도달한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사실상 터부시되는 문화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녹십자그룹의 모태가 된 한일시멘트 오너 일가 역시 과거 형제들이 순번을 정해 회장직을 맡았던 사례가 있어, 향후 경영 안정성 확보를 위해 사촌 세대 경영 시대에 접어들었을 때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