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학계 출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인 황주호 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원전 수출 확대, 원전 강화 기조를 선명히 반영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다시 원전 강국을 만들자.”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사에서 한 이야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선임된 황 사장은 핵연료처리 분야의 권위자로 오랜 기간 학계에서 활동해 온 전문가다. 10년 만의 비관료 출신 한수원 사장인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원전 수출 확대, 원전 강화 기조를 선명히 반영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황 사장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경험을 토대로 체코에서는 원전 건설 본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냈고,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부 때 백지화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는 등 원전 건설 사업을 다시 추진하는 데 집중했다.
재미있는 점은 원전정책에서 윤석열 정부와 커다란 차이를 두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집권과 황 사장의 임기 종료 시점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황 사장의 임기는 올해 8월까지로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에너지 정책 전환의 시점에서, 황 사장의 후임 인선과 한수원의 향후 방향에도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에너지 노선과 원전 활용의 딜레마
이재명 정부는 '실용주의 에너지 정책'을 내세우며 이전 정부와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원자력의 중요성은 인정하되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시대적 과제를 함께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압박과 국내 에너지 안보 이슈를 동시에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 안정성이 주요 국가의 안보 의제로 부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인공지능, 반도체 등의 미래 산업들이 막대한 양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재생에너지에만 힘을 쏟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국제캠페인) 등을 중시해온 진보 진영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원자력 발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짜기도 어려운 일이다.
정부의 기조가 한쪽으로 쏠려있는 것이 아니라 탈원전과 원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쪽으로 펼쳐지게 된다면 정부의 에너지 비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인사가 한수원의 키를 잡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한수원 사장 인사는 단순히 공기업 운영자를 뽑는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현장에서 정확하게 구현할 전략가를 세우는 인선인 셈이다.
◆ 한수원 사장은 정부 원전 정책과 한마음, 7대 이관섭부터 9대 황주호까지
그동안 한수원 사장 자리는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핵심 실행 주체로서 역대 정부의 철학과 전략이 뚜렷이 반영돼왔다.
특히 기후위기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원전 감축’이 글로벌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수원 사장은 정부의 원전 기조를 반영하는 주요 창구가 되어왔다.
7대 이관섭 사장은 산업자원부 출신 관료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 등을 역임한 인사다.
이 전 사장은 임기가 아직 남아있음에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발하며 2017년 자진 사퇴하면서 원전 정책에 따른 사장 인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 자리를 대신한 8대 정재훈 전 사장은 이관섭 전 사장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정 전 사장은 관료 출신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를 충실히 반영해 원전 해체 기술 개발과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집중했으며, 한수원을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변모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정 전 사장은 회사명에서 '원자력'을 빼는 방안까지 검토할 만큼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인사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흐름은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급변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윤 대통령의 집권 이후 선임된 황주호 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친원전 기조에 따라 원전 중심의 사업 확대, 해외 수출 전략 추진 등 정권의 에너지 철학을 선명하게 실현해 왔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5월8일 체코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 한수원의 미래, 에너지 정책의 시험대가 되다
한수원은 단순한 전력공기업을 넘어, 한국의 원자력 산업을 대표하고 에너지 주권을 상징하는 국가 전략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 전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한수원과 정부가 어떻게 발을 맞춰 나아가느냐가 국내 산업 생태계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원자력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재생에너지와 비교해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지만 동시에 폐기물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트리거가 되기도 한다.
소형모듈원전(SMR) 등의 신기술과 관련해 사회 곳곳에서 안정성과 비용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에너지 정책의 갈림길에서 한수원이 어떤 리더십을 구축해 나갈지에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