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위즈는 한 때 3N의 일원으로 한국 게임업계를 대표하던 회사였지만 이후 주류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하지만 최근 김승철 네오위즈 대표이사의 지휘 아래 다시 한 번 국내 게임업계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한국 게임업계에서 3N이라는 별칭은 주로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을 일컫는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의 3N은 멤버가 조금 달랐다. 엔씨소프트, 넥슨은 똑같지만 넷마블 대신 네오위즈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네오위즈는 2000년대 중후반 슬러거, 아바, 그리고 플랫폼 ‘피망’으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국내 게임업계가 빠르게 모바일 게임 위주로 재편되면서 그 흐름을 놓치고 주류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던 네오위즈가 다시 게임업계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네오위즈 변화의 시발점은 단 하나의 게임, ‘P의 거짓’이다.
이 게임은 네오위즈에게 단순히 하나의 게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회사의 방향, 전략, 정체성을 통째로 바꿔놓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P의거짓을 위시한 네오위즈 변화의 중심에 위치한 사람이 바로 김승철 네오위즈 공동대표이사다.
◆ 20년차 '네오위즈맨' 김승철, 게임 IP 전문가에서 전략가로
김승철 대표는 2002년 입사 이후 20년 넘게 네오위즈에서만 커리어를 쌓아온 ‘정통 네오위즈맨’이다.
김 대표는 네오위즈의 거의 모든 IP를 두루 경험했고, 이런 경험은 그를 네오위즈의 방향성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전략가로 만들었다.
김 대표가 2021년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네오위즈의 전략 방향은 명확하게 바뀌었다.
그동안 네오위즈의 매출은 가벼운 웹보드게임(웹브라우저에서 바로 플레이할 수 있는 보드게임), 그리고 예전의 명성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어느정도의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기존 IP(AVA 등) 위주로 구성돼있었다. 블레스 등의 신규 IP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2021년 초 P의거짓 개발팀이 본격적으로 꾸려지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였지만, 점차 “이 게임이 회사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게임은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철학, AAA 콘솔게임 도전으로 이어지다
'P의 거짓'은 동화 ‘피노키오’를 모티브로 한 콘솔 소울라이크 게임이다. 2023년 출시 이후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300만 건을 돌파하며 국내외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게임의 본고장인 북미·유럽에서 성공한 첫 번째 국산 AAA급 콘솔 게임이라는 타이틀도 주어졌다.
김승철 대표가 P의거짓을 통해 AAA급 콘솔 게임에 도전한 것은 게임이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게임은 콘텐츠고, 콘텐츠 사업으로 회사가 장기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식 ‘과금 유도’를 통해 게임 이용자들에게서 수익을 얻어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팬을 만들고, 브랜드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국내 게임언론 게임뷰, 일본의 게임언론 포게이머와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저희도 오랫동안 모바일 게임을 해왔지만, PC 및 콘솔이나 인디 쪽을 조금 해보니 역시 장기적으로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건 이런 게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중요한 것은 우리 게임을 즐기고,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 이른바 '팬'을 남겨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 AAA 콘솔 집중의 리스크,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방어
물론 AAA 콘솔게임 중심 전략은 위험 부담도 크다. 개발비가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만큼 흥행에 실패하면 타격도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 ‘위처3’로 엄청난 팬층을 만들면서 단숨에 세계 정상급의 게임회사로 떠올랐지만, 다음 게임인 사이버펑크2077의 실패로 순식간에 회사가 망할 위기까지 몰렸던 폴란드의 CDPR(CD프로젝트)가 있다.
물론 CDPR은 이후 사이버펑크2077의 지속적 사후지원, 유료 DLC(다운로드 콘텐츠)인 ‘사이버펑크2077:팬텀리버티’의 성공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AAA급 게임 개발의 리스크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김 대표는 이 리스크를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AAA급 콘솔 게임 제작에 집중하되, 캐시카우가 될 수 있는 모바일 게임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브라운더스트2 같은 서브컬처 캐릭터 수집형 모바일 게임은 국내뿐 아니라 서브컬처의 본고장인 일본 등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며 안정적 매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네오위즈의 IR자료에 따르면 P의거짓 출시 효과가 온전히 반영된 2023년 4분기 네오위즈의 매출 비중은 PC·콘솔 47%, 모바일 게임 42% 이었지만 2025년 1분기 기준 모바일 게임 51%, PC·콘솔 41%로 변화했다.
PC·콘솔 매출은 해당 기간 613억 원에서 364억 원으로 대폭 감소했지만 모바일 매출은 361억 원에서 453억 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P의거짓의 출시 효과가 빠진 부분을 모바일 게임이 충실하게 채워준 셈이다.
한쪽에서는 김 대표의 ‘남기는 것’ 철학이 모바일 게임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브라운더스트2는 출시 초기 소위 ‘매운맛 과금’으로 상당한 비판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후 지속적인 유저 친화 운영과 캐릭터성 강화를 통해 IP 자체의 팬덤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네오위즈의 IR자료에 따르면 브라운더스트2의 매출은 출시 초기인 2023년 4분기와 비교해 출시 1년 후인 2024년 4분기에 무려 90% 증가했다.
네오위즈는 'P의거짓'을 통해 국내 게임업계 전반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P의거짓이 국내 게임사들의 AAA급 게임 개발 흐름의 첫번째 주자였기 때문이다. <그래픽 씨저널>
◆ 김승철과 'P의거짓'이 이끈 전환, 게임업계 흐름을 바꿨다
“요즘은 역시 PC와 콘솔 게임입니다.”
김 대표가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다. 김 대표에 따르면 네오위즈의 현재 개발 방향은 PC·콘솔 80%, 모바일 20% 정도다. 김 대표는 PC·콘솔 게임을 네오위즈의 차세대 성장 축으로 상정하고 있는 셈이다.
한쪽에서는 ‘P의거짓’의 성공이 국내 게임업계 전체의 트렌드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P의거짓 출시 이후 시프트업의 '스텔라블레이드', 넥슨의 '퍼스트버서커: 카잔', 크래프톤의 ‘인조이’ 등 국내 AAA 콘솔 게임의 연이어 등장하며 모두 세계 무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각 기업의 AAA급 게임 개발 시도는 개발 시기를 보더라도 모두 독립적으로 수립된 전략이지만, 국내 게임사들에게 ‘콘솔 게임도 된다’는 확신을 처음 제공한 건 P의거짓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온 게임들을 제외하고서라도 크래프톤의 ‘눈물을 마시는 새’, 펄어비스의 ‘붉은 사막’ 등 국내 게임사들의 AAA급 게임 출시 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라며 “P의거짓이 그 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