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그룹은 그동안 여러 차례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 배경에 사익편취와 내부거래 등의 규제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노스페이스로 잘 알려진 영원무역그룹 성기학 창업주는 왜 지배구조에서 많은 친족회사를 두어 복잡한 형태를 띄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의 실마리는 영원무역그룹이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피하려고 했다는 의혹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마다 공정자산이 5조 원을 넘긴 그룹을 공시의무가 생기는 대기업집단으로 분류하고 심사를 통해 발표한다.
영원무역그룹은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에 지정될 예정이었으나 당시 계열사 현황 제출 과정에서 성기학 창업주의 친인척 회사를 누락하면서 대기업집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영원무역그룹은 2024년 5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이후 화신, 화신정공, 글로벌오토트레이딩 등 8개 계열사가 친족에 의해 독립 경영되고 있어 분리돼야 한다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신청한 바 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조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총수(동일인)이 지배하지 않는다고 인정되는 회사를 이해관계자의 요청에 따라 대기업집단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령에 의거해 영원무역그룹에 속했던 친족 계열사가 분리됨에 따라 영원무역그룹의 자산규모(공정자산 기준)는 6조9천억 원에서 4조7761억 원으로 줄었다.
한국CXO연구소는 2024년 6월5일 발표한 '대기업집단 고용변동 분석' 자료에서 "화신, 화신정공, 글로벌 오토트레이딩 등 8곳이 영원그룹으로 묶여있다가 분리된 영향으로 빠진 자산규모가 1조2천억 원이 넘는다"며 "1조 원이 넘는 자산을 제외하면서 영원무역그룹의 공정자산 규모는 4조 원 대로 대폭 줄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영원무역그룹은 2025년 대기업집단 분류에서 가장 밑단에 위치하게 됐다.
영원무역그룹에 포함된 계열사 수도 2024년 50곳에서 2025년 20곳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순위 역시 73위에서 92위로 가장 하위로 내려 앉았다. 내년 대기업집단 분류에서 영원그룹이 제외될 가능성을 점치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성기학 창업주는 왜 영원무역그룹을 이토록 대기업집단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하는 것일까.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 그룹의 모든 계열사를 대상으로 공시와 각종 신고의무가 부여되고 계열사 사이 일감 몰아주기, 부당 내부거래, 부당지원 부문에서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된다.
성기학 창업주로서는 이런 규제가 버거웠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친족회사를 많이 둔 것과도 관련이 깊어 보인다.
일감 몰아주기 및 사익편취 규제와 관련된 제도는 2013년 공정거래법에 관련 조항이 신설된 뒤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 특히 2020년 전부 개정을 통해 규제대상 기업 및 행위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 특징이다.
공정거래법은 2014년 개정되면서 총수일가가 30%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대해 부당한 지원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이는 일감몰아주기의 직접적 규제근거가 됐다.
2017년에는 친족분리 회사가 모그룹과 거래할 때 해마다 거래현황을 공정위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 됐다.
2021년에는 분리친족이 새로 설립한 회사를 3년간 사후점검 대상에 추가하는 내용도 담겼다.
영원무역그룹에 존재하는 다수의 친족회사들은 2024년 기준 30여 개로 이처럼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설립된 것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성기학 창업주가 설령 사익편취나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된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의문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친족이 지분 100%를 쥐고 있는 회사 래인앤코 유한회사를 꼽을 수 있다.
래이앤코는 2017년 12월 광고대행업을 사업목적으로 자본금 5억 원에 설립된 업체다. 2024년 6월 기준 대표자는 성기학 창업주의 차녀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문제는 이 회사의 종업원이 4명 뿐이며 2018년~2022년까지는 매출이 적으면 5억 원, 많으면 16억 원 수준이었고 5년 연속 영업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2021년까지는 전체 매출 10억 원의 65%를 내부거래로 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 5조 원의 대기업집단을 이끄는 그룹의 후계자로 꼽히는 인물이 경영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정도의 규모이고 실적으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2023년 말 래이앤코의 매출은 24억2700만 원, 영업이익은 5억8400만 원, 순이익은 5억3500만 원으로 개선됐지만 매출 1억3500만 원을 영원무역홀딩스와 수의계약으로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원무역그룹이 내년에 대기업집단에서 벗어나게 되면 래이앤코를 비롯한 친족회사의 내부거래도 늘어날 여지가 있다.
재계에서는 성기학 창업주가 투명경영을 강화해야 시장에서 제기되는 이런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