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완 우리은행 은행장이 1월23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2025년 경영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리은행>
[씨저널] “최근 일련의 금융사고로 실추된 은행 신뢰 회복을 위해 내부통제의 전면적 혁신과 기업문화 재정비에 우선 목표를 두겠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은행장 후보 시절 이야기했던 목표다.
내부통제는 우리은행뿐 아니라 국내 은행 모두의 숙제다. 국내 은행장 가운데 내부통제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이야기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내부통제란 실무 직원의 일탈을 방지하는 측면의 이야기지만, 우리은행은 무려 최고경영자의 일탈이 문제가 됐던 곳이기 때문이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부당대출 사건으로 우리은행이 혼란한 상황에서 은행장에 오른 정진완 은행장의 최우선 과제는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한 내부통제라고 할 수 있다.
◆ 내부통제 조직 고도화와 시스템 혁신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부당대출 사건은 지주 회장 뿐 아니라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까지 엮여있는 사건이다. 정 은행장의 내부통제는 은행장인 자기 자신까지도 겨냥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 은행장은 취임 이후 내부통제 조직을 전면 개편했다. 자금세탁방지센터와 여신감리부를 본부급으로 격상시켜 위상을 강화했고, 준법감시실 내에는 ‘책무지원팀’을 신설해 임원들의 책임 이행 여부를 상시 점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정보보호본부와 자금세탁방지본부도 준법감시인 산하로 일원화해 기능의 중복을 제거했다. 아울러 내부통제 협의체를 만들어 각 기능별 담당 임원들이 실무 논의부터 전략 수립까지 함께하는 구조를 정착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만으로는 확실하게 내부통제가 ‘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내부통제의 방향을 확실히 보여주는 변화는 바로 그룹의 윤리경영실에 익명으로 운영되는 ‘제보·신고 핫라인’을 도입한 것이다.
최고위 임원들의 비리 사실을 알게 됐거나 타의로 가담하게 된 직원들이 이를 익명으로 고발할 수 있는 공식 루트가 마련된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윤리경영실은 그룹 전체의 내부통제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인 동시에 임원들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감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특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불시에 휴가를 보낸 뒤 해당 직원의 업무를 감찰하는 ‘강제휴가제도’의 대상을 임원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 내부통제 문화 정착을 위한 조직문화 개선
제도적 장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조직문화다. 정 행장은 “금융사고를 유발한 직원은 동료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이는 단순한 실수나 착오가 아닌, 의도적 부정행위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조직에 심겠다는 메시지다.
우리은행은 내부자 신고 제도를 활성화하는 한편, 내부고발자 보호 조항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고위 임원이라도 예외 없이 제보와 감시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과거 ‘온정주의’와 ‘연고주의’에 기반한 느슨한 조직문화를 탈피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내부고발자 보호 강화는 윤리경영실 익명 제보 핫라인 도입과 맞물려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정 행장은 ‘블랙리브’ 제도도 도입했다. 팀장급 이상 임직원이 10일 이상 의무 휴가를 떠나면, 해당 기간 동안 그 직원의 업무를 집중 점검하는 방식이다. 임원들도 예외가 없다.
금융사고가 ‘1인의 장기독점 업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부통제의 사각지대를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된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1월20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한 민주당-은행권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있다. <연합뉴스>
◆ 정진완 행장의 최우선 과제는 ‘신뢰 회복’
정진완 은행장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단기적 실적보다 신뢰 회복을 우선시 하겠다는 것이다.
금융 기관에게 소비자의 신뢰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우리은행은 손태승 전 회장 사건으로 신뢰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고, 이에 따른 이미지 손상은 단순히 수익지표를 개선한다고 해서 복구되는 것이 아니다.
정 은행장이 택한 방식은 구조와 문화를 동시에 바꾸는 것이다. 고위 임원을 포함한 전방위 감시 체계를 도입하고, ‘책임 있는 리더십’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통제 문화를 재정비하는 것. 이는 단순한 조직 재편이 아니라 ‘우리은행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정 행장의 이런 시도는 현재까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에서 올해 각각 2건 씩의 금융사고가 공시됐지만, 우리은행은 올해 아직까지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단기적 통계만 가지고 그동안 우리은행에게 씌워진 금융사고 1위 이미지를 씻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2019년부터 2025년 4월까지 모두 합쳐 33건, 1158억3100만 원 규모의 금융사고를 냈는데 이는 국내 은행들 가운데 최대규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제 내부통제를 위한 시스템과 조직개편은 금융권 전반의 흐름이 됐다”라며 “경영 안정성과 주주가치 제고에도 힘쓰는 금융지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