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우리금융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우리은행에서 '계파 갈등 타파'라는 임종룡 회장의 의지를 앞장서서 실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분열과 반목의 정서, 낡고 답답한 업무 관행,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인사 등 음지의 문화는 이제 반드시 멈춰야 한다.”
언뜻 정치인의 연설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2023년 3월 취임하면서 했던 취임사의 일부다.
‘계파 갈등’은 우리금융그룹, 그리고 우리은행 조직문화의 고질병으로 꼽힌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출범한 이후,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업파’와 ‘한일파’ 사이의 갈등이 현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룡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우리금융그룹의 계파 갈등 타파를 전면에 내걸었다. 그리고 핵심계열사인 우리은행에서 임 회장의 이런 의지를 실행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정진완 우리은행장이다.
◆ ‘대등합병’이 남긴 뿌리 깊은 분열
우리은행의 계파 갈등은 1998년 IMF 위기 당시 자산과 인력이 비슷했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대등합병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밖에서 볼 때는 균형을 잘 맞춘 통합이었지만, 조직 내부에서는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려는 상업은행 출신들과 한일은행 출신들 사이의 긴장이 팽배했다. 특히 상업은행 100년, 한일은행 67년이라는 각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충돌하면서 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졌다.
계파 갈등의 여파는 인사와 승진, 조직 내 의사결정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 초반 우리은행장에 이순우 전 우리은행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등 상업 출신 은행장이 연이어 선임되자 한일은행 출신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후 우리은행은 2017년 10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폭로로 채용비리 사태에 휘말렸는데, 이 사태의 시작은 한일은행 출신 인사들의 제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당시 채용비리와 관련해 자리에서 물러난 인사들은 대부분 상업은행 출신이었다.
다른 계파 직원들끼리는 밥도 같이 안 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계파 갈등이 심각해지자, 우리은행은 ‘기계적 균형’ 인사를 통해 계파갈등을 완화하려는 시도도 했다. 은행장과 수석부행장 등 주요 보직을 두 계파가 번갈아 차지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고 ‘출신이 실력을 이긴다’는 인식을 은행 전체에 팽배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문제 역시 본질적으로는 계파 갈등과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4년 10월10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손태승 전 회장 사건과 관련해 임종룡 회장에게 “우리금융 특유의 파벌문화 때문에 내부통제가 작동하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 회장 역시 이 지적에 “일부 계파적 문화가 잔존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음지의 문화를 없애야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에 기업 문화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대답했다.
◆ 임종룡이 특명 맡긴 ‘통합 세대’ 정진완, 첫 단계는 출신 지우기
정진완 은행장은 우리은행장 후보로 거론되던 6명 가운데 가장 젊은 인물이었다. 우리은행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으로 승진한지 1년 밖에 안 된 상황이기도 했다.
이런 정 은행장이 낙점된 것을 두고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임종룡 회장의 의지가 깊게 반영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정 은행장은 실제로 우리은행의 계파를 청산하는 데 최적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일은행 출신으로 우리은행의 계파 갈등을 직접 느낀 사람이기도 하면서 한일은행에 몸담은 시간이 짧아 계파에 깊이 관여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나는 한일은행 출신이지만 입사 2년 반 만에 통합을 겪어 계파 갈등을 잘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은행장은 은행장에 오르자마자 임 회장의 ‘계파 청산’ 특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정 은행장은 취임 직후인 1월 인사카드에서 출신 은행 표기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에 더해 학력과 병역, 출신 지역 등 업무 능력과 관련이 없는 정보를 모두 삭제하도록 했다. 계파보다 실력을 우선하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또한 양측으로 갈라졌던 퇴직자 동우회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임종룡 회장의 숙원이기도 하다. 퇴직 직원들의 자율적 모임인 상업은행 동우회와 한일은행 동우회는 두 은행의 합병 이후에도 각각 운영돼왔다.
두 동우회는 통합 이후에는 ‘우리은행 동우회’라는 단일 명칭으로 운영된다. 단순한 이름 변경을 넘어 계파 네트워크를 해체하고 우리은행이라는 단일 조직원으로서 응집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왼쪽 첫번째)과 정진완 우리은행장(오른쪽 첫번째)이 1월3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효자동·을지로 동우회 통합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두 동우회장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은행> |
◆ 1년 남은 임종룡 임기, 정진완의 성과에 연임이 달려있다
임종룡 회장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2025년 우리금융그룹, 특히 우리은행이 거두는 성과에 임 회장의 연임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태승 전 회장과 조병규 전 은행장의 사건 이후 우리은행에게 가장 절실한 과제는 바로 신뢰회복이다. 그리고 우리은행의 계파갈등 청산은 우리은행의 신뢰 회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정진완 은행장이 자신에게 주어진 계파 갈등 청산과 신뢰 회복의 특명을 제대로 완수하는지가 임종룡 회장 연임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쪽에서는 정 은행장이 앞으로 우리금융지주의 회장으로 가는 길을 닦는 데에도 이번 1년이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 은행장이 1968년 생으로 아직 젊은 데다가 임기도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임종룡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면 정 은행장이 지주회사에서 영향력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 은행장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아직 이른 시점”이라면서도 “임종룡 회장이 내년 연임에 성공한다면 정 은행장이 임기를 마친 뒤 우리금융지주에서 역할을 맡아 임 회장의 곁을 지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