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산업 25년 전 가습기 사건 때도 '제조사 책임'으로 피해갔다, 김상준 '2080치약' 논란으로 리더십 시험대
안수진 기자 jinsua@c-journal.co.kr2026-01-21 09:24:08
[씨저널] 애경산업의 대표 브랜드 ‘2080치약’에서 사용 금지 원료인 트리클로산이 검출되면서 김상준 애경산업 대표의 위기관리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애경산업 측은 해외 위탁 생산 과정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부터 반복된 ‘유통사의 책임 회피’ 논란이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김상준 애경산업 대표이사가 2080치약 트리클로산 검출 사태에서 공급망 관리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씨저널>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문제가 된 2080치약 6종 가운데 87%(754개)에서 트리클로산이 최대 0.16%까지 검출됐다. 식약처는 2080치약 수입제품 6종 가운데 수거 가능한 제조번호 870여개 제품을 모두 수거해 검사를 진행했다.
식약처의 검사 결과 트리클로산은 제조 장비 세척 과정에서 사용된 소독액에 함유돼 수입제품에 혼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추가로 검사를 진행한 국내 제조 2080치약에서는 같은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트리클로산은 식약처가 치약 사용을 금지한 성분이다. 유해성 논란과 별개로 유통 단계에서 사전에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애경산업은 관리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입에 닿는 제품에서 법적 금지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애경산업은 유통 중인 중국산 2080치약에서 트리클로산이 검출되자 뒤늦게 회수와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애경산업이 자체 조사한 결과 2023년 4월 이후 제조된 제품부터 트리클로산 성분이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트리클로산은 유해성이 지적돼 온 물질로 국가별 규제 당국은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해왔다. 호르몬을 교란시키고 항생제 내성을 생기게 하며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동물실험 연구결과가 있어서다. 특히 햇빛을 받을 경우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으로 변한다고 알려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6년 향균 비누, 2017년 의료용 소독제에서 트리클로산 사용을 금지했다. 유럽연합(EU)은 2013년 화장품 보존제에, 국내 식약처는 2016년 구강용품에 트리클로산 사용을 금지했다.
다만 트리클로산이 위생용품을 통해 체내로 축적될 가능성을 두고서는 여러 연구 결과가 엇갈리고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트리클로산이 생체축적성과 잔류성이 강한 물질로 지목된다. 캐나다 환경운동가 릭 스미스와 브루스 루리에의 저서 ‘슬로우데스’에는 트리클로산이 동물과 사람의 지방조직이나 혈액에서 검출된 사례가 소개됐다.
트리클로산이 체내에 흡수되더라도 비교적 빠르게 배출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논문에 따르면 트리클로산이 체내에 흡수되더라도 소변이나 혈액 등을 통해 4일 안에 흡수량의 24~83%가 배출된다.
◆수입제품이라도 애경산업의 관리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애경산업은 이 문제가 국내에서 직접 생산된 제품이 아니라 일부 수입 품목에서 발생한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서는 애경산업이 판매자로서 품질관리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들은 제조 주체보다는 애경산업이라는 브랜드를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치약은 애경산업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수입해 자사 대표 브랜드인 ‘2080’을 붙여 판매한 제품이다. 제조물 책임법은 제조·가공업자뿐 아니라 제조물을 수입해 자신의 이름·상호·상표 등을 표시한 자 역시 제조물 책임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애경산업의 법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법적 책임과는 별도로 유통업체는 원료 사용부터 제조·세척 공정에 이르기까지 공급망 전반의 위해 요소를 사전에 점검하고 관리할 책임을 진다. 특히 치약은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질병의 치료·예방과 관련된 제품에 해당하는 만큼 수입·판매 단계에서도 일반 공산품보다 높은 수준의 안전 관리가 요구된다.
치약은 장기간 반복 사용되며 구강을 통해 인체에 직접 작용하는 생활필수 위생용품이다. 이 때문에 단일 사고라 하더라도 기업의 품질관리와 안전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평가가 불가피하다고 분석된다.
◆25년 전 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
이번 치약의 유해성 물질 논란은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건 당시, 애경산업의 대응을 불가피하게 떠올리게 한다.
애경산업은 2001년부터 10년 넘게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유통·판매해왔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제조사 SK케미칼과 유통사 애경산업은 1994년~2011년 가습기메이트를 218만 개 이상 판매했다.
이 제품에는 폐와 코를 딱딱하게 만들고 뇌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론(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론(MIT)이 포함돼 있었다. 이 성분이 시민들의 건강 피해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2011년 역학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2023년 12월31일 기준 공식 사망자는 1843명, 피해 인정자는 6048명에 달했다.
이 사건의 피해인정과 책임을 둘러싼 논란은 장기간 이어졌다.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2019년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직원 2명이 구속됐고 2024년 서울고등법원은 관련 판매·제조사 임직원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이 사건을 사회적 참사로 공식 규정하고 국가 책임에 기반한 배상체계로 전환했다.
◆치약 사건 대하는 태도 가습기 살균제 때와 다르지 않다
애경산업이 이번 책임을 제조사 쪽으로 돌리는 태도도 과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책임을 둘러싼 논쟁과 궤를 같이한다. 애경산업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제조사인 SK케미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입장을 보여 왔다.
애경산업은 2022년 피해구제 금액 분담 비율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 조정위원회의 보상조정안을 거절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체 피해규제금 규모는 9230억 원가량으로 추산됐고 이 가운데 애경산업과 옥시가 분담해야 할 비중은 전체의 60% 정도로 산정됐다.
애경산업의 보상조정안 수용 거절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집단적 피해구제는 사실상 무산됐고 피해자들은 개별 민사소송 절차로 내몰리게 됐다. 그 뒤에도 애경산업은 피해보상과 관련한 질의에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논란을 이어왔다.
애경산업은 문제가 된 살균제가 SK케미칼과의 물품 공급계약 및 제조물책임(PL) 계약에 따라 유통된 제품이라는 점을 들어 이 사건의 책임이 SK케미칼에게 있다며 분쟁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애경산업은 지난해 이 소송의 2심에 승소했다.
◆김상준 대표가 이끄는 애경산업 이번 사태로 소비자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 안아
김상준 대표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으로 2023년 11월 애경산업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해외 진출과 재무 관리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다만 이번 트리클로산 논란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면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김 대표는 애경산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일본과 미국 등의 국가로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일본에서는 뷰티 브랜드 루나를 통해 색조 화장품 시장 공략에 나섰고 미국에서는 뷰티 유통업체 실리콘투와 손잡고 에이지투웨니스(AGE20's)를 중심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그는 2022년 2월 애경산업에 합류하기 전까지 유니레버카버코리아에서 근무했다. 당시 아시아를 넘어 호주 시장 개척이라는 성과를 남겼다.
김 대표가 취임한 뒤 매출은 소폭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25년 3분기에도 연결기준 매출 1693억 원, 영업이익 73억 원으로 2024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2.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4% 감소했다. 2025년 연간 추정치는 매출 6586억 원, 영업이익 284억 원으로 2024년보다 각각 3%, 39.3%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김 대표는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 스쿨 MBA를 졸업했다. 그 뒤 코웨이에 입사해 전략기획실과 커뮤니케이션실 부문장 등을 지냈다. 유니레버카버코리아에서는 기획재무본부장(CFO)을 맡았고 애경산업에서는 경영지원부문장(CFO)을 거쳐 대표이사에 올랐다. 안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