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태원 2년 전 '서든데스' 발언 후 '수술급' 리밸런싱, AI 중심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정교화 시도
장상유 기자 jsyblack@c-journal.co.kr2026-01-20 08:37:10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그룹 리밸런싱이 2026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최 회장이 지난해 11월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SK >
[씨저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구조 재편 작업, ‘리밸런싱’이 본격화한 지 어느덧 2년을 넘어섰다.
SK그룹 리밸런싱의 출발점은 2023년 말이다.
최 회장은 2023년 10월 열린 SK그룹 ‘2023 CEP 세미나’ 마지막 날 폐막 연설에서 돌연사를 뜻하는 ‘서든데스’ 가능성을 언급했다. 2016년 6월 확대경영회의 때 꺼냈던 열쇳말을 7년 만에 다시 강조한 것으로 경영 환경변화의 엄중함을 강조했다고 풀이된다. 2023년 말에는 오랜 기간 그룹 성장에 큰 공을 세운 부회장 4인을 교체하는 결단을 내렸다.
올해 시작과 함께 최 회장은 리밸런싱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효과를 거뒀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올해 SK그룹 신년사에서 “(지난해는) 리밸런싱과 운영개선(O·I)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노고와 헌신이 그 어느 때보다 컸던 한 해였다”고 임직원들의 성과를 짚었다.
재계에서도 거래 규모 4조 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SK실트론 매각이 SK그룹 리밸런싱의 마무리 단계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최 회장의 SK그룹 리밸런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 자산매각에서 사업 조정으로, 리밸런싱의 변화
구체적으로 보면 지금까지의 SK 리밸런싱이 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주는 자산매각이나 계열사간 합병 등 큰 규모의 움직임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각 계열사별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SK그룹은 지주사 SK가 지난해 3월 특수가스 생산 자회사 SK스페셜티 지분 85%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2조6300억 원에 파는 등 활발한 자산매각 움직임을 보였다.
또 SK이노베이션과 SK온을 핵심에 두고 계열사간 합병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에 열을 올렸다. 2024년 11월 SK이노베이션과 SKE&S의 합병법인이 공식 출범했고 SK온은 SK엔무브를 품고 새출발했다.
이어 앞으로는 그룹 차원의 ‘대수술’을 잠정적으로 마무리하고 계열사 안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에 힘을 싣는 ‘선택과 집중’이 진행될 공산이 크다.
투자형 중간 전문지주사인 SK스퀘어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본연의 목표에 속도를 내는 한편 SK이노베이션은 액화천연가스(LNG), SK온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에 힘을 실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단단히 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SK그룹 리더들의 목소리에서도 아직 리밸런싱은 핵심 의제로 자리잡고 있다.
앞서 10일 SK그룹의 올해 첫 토요 사장단 회의(전략 글로벌위원회)가 진행된 가운데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올해 주요 안건으로 리밸런싱을 꼽았다.
SK그룹 리밸런싱의 ‘본체’격인 SK이노베이션의 장용호 총괄사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조정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 총괄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의 구조적 변화와 근본적 수익성 개선을 위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빠른 시일 내에 완수하자”며 “수익 구조를 강화하고 사업 안정성을 키워 재무 건정성을 높이고 자본시장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해 나가자”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 리밸런싱 2년, 몸집 줄고 부채줄이고
SK그룹의 리밸런싱은 효율성과 재무구조 개선 측면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SK그룹에서는 2021년 미국 수소기업 플러그파워와 프랑스 유전자·세포치료제 위탁생산기업 이포스케시 등에 2조4천억 원을 투자한 데 이어 2022년 이후에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수의 지분투자를 지속했다. 다만 리밸런싱이 본격화한 2024년부터는 군살을 빼는 데 집중했고 SK의 연결대상 종속회사 수는 2024년 초 700개 이상에서 지난해 3분기 말 600개 초반까지 축소됐다.
자산매각에 따른 현금 유입은 직접적으로 SK 차입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냈다. SK는 SK스페셜티 매각대금 2조6300억 원에 베트남 빈그룹 지분 정리 등을 더해 4조5천억 원 안팎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SK 별도기준 순차입금은 2024년 말 10조5천억 원에서 지난해 3분기 말 8조4천억 원으로 축소됐다. 같은 기간 별도기준 부채비율은 86.3%에서 77.4%로, 연결기준 부채비율도 167.8%에서 150.6%로 감소했다.
또 별도기준 차입금의존도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하향 기준선 아래로 내려갔다. SK 별도 차입금의존도는 2024년 말 40.5%에서 지난해 3분기 말 37.0%로 낮아졌다. 한국신용평가의 SK 신용등급 하락 요인 가운데 하나는 ‘별도기준 차입금의존도 40% 초과’다.
SK는 지난해 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구체적 협상에 돌입한 SK실트론과 시장에 매물로 올려 놓은 중국 동박기업 론디안왓슨 등도 추가 재무구조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수명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11월 “SK그룹은 신규 투자를 지속하며 순차입금이 10조 원을 넘었지만 투자정책을 보수적으로 바꾼 자산매각 대금 유입으로 재무부담이 다소 축소됐다”며 “추가적 비핵심자산 매각을 검토하고 있고 이 대금을 차입금 축소에 활용하면 재무구조가 더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 리밸런싱의 최종 결과물은? 최태원이 강조한 인공지능(AI)
최 회장의 리밸런싱은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고 재무를 안정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사업구조를 갖추는 것까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최 회장은 리밸런싱과 함께 AI 분야를 향한 대규모 투자를 사실상 ‘투트랙’으로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SK그룹은 2024년 6월 진행한 경영전략회의에서 수익성 개선 및 사업구조 개편 등을 통해 2026년까지 AI와 반도체 등 미래 성장분야 투자 및 주주환원에 80조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최 회장이 바라보고 있는 AI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자산매각 등을 원활히 진행하는 한편 계열사별 세심한 전략 설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시대 투자들은 그룹의 명운이 결정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그룹의 다른 주력사업인 배터리 부문을 보면 SK온의 기업공개(IPO)가 사실상 멀어져 대규모 자금조달 창구가 사라지기도 했다.
AI 시대 SK그룹에서 가장 앞서가는 계열사로 평가받는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국내에 19조 원의 대형 투자를 결정했다.
SK스퀘어도 지금까지 재무구조 안정화 기조에 맞췄던 보수적 경영 방침을 깨고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의미 있는 투자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방침을 앞세우고 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을 포함한 대부분의 계열사에서도 AI 관련 전문 조직을 신설해 반도체를 넘어 SK그룹이 AI 시대 어떤 사업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판짜기에 나섰다.
AI가 촉발한 거대한 변화 속에서 최 회장은 올해를 그룹의 성장을 위한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AI를 최전선에 내세우며 “이 거대한 혁신은 반도체 만의 과제가 아니라 에너지, 통신, 건설, 바이오 등 우리가 잘해왔던 기존 사업의 본질을 더욱 단단히 다지고 그 위에 AI라는 혁신을 입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