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저널] ‘SK온 일병 구하기’
SK그룹이 2023년 말부터 진행한 ‘리밸런싱’의 핵심을 설명해 주는 말이다. 시장 선점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피하기 어려웠던 배터리사업을 살리는 작업이다.
지난해 말 SK이노베이션과 SKE&S의 합병으로 시작된 SK온 지원 움직임은 올해 11월1일 끝난 SK온의 SK엔무브 합병까지 이어졌다. 현금창출 능력이 우수한 SKE&S를 SK온 모회사 SK이노베이션에 더하는 한편 SK온도 직접적 재무개선 효과를 볼 수 있는 흡수합병 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SK온은 최근 자체적으로도 포드와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정리하며 추가 재무 안정화 작업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SK온에 처음으로 제조 전문가 각자대표체제가 들어섰다. 지금까지 기획·전략전문가가 SK온 리더십의 한 축을 맡아왔던 것을 고려하면 외형 확장에서 내실 다지기로 방향성이 확실히 변화한 것이다. 이에 새로 SK온 대표이사를 맡게 된 이용욱 사장의 명확한 과제가 흑자전환에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 이석희 파트너, ‘북미통’ 유정준에서 ‘제조 전문가’ 이용욱으로
올해 국내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가운데 SK온은 유일하게 대표이사에 변화를 줬다. 임기가 1년6개월여 밖에 지나지 않았던 유정준 부회장이 물러나고 이용욱 사장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특히 이번 인사가 배터리업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순한 대표 교체를 넘어서 리더십 전문성이 ‘180도’ 변했기 때문이다.
유 부회장은 SK그룹 내에서 손꼽히는 해외 전문가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 지역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유 부회장은 미국 회계법인 딜로이트앤드터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1998년 SK그룹에 합류해 SK수펙스추구협의회 글로벌성장위원장, SK그룹 북미대외협력 총괄, 미국 에너지솔루션사업을 담당하는 SKE&S 패스키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유 부회장이 SK온의 핵심 투자지역인 북미 사업에 힘을 싣기 위해 선임됐던 반면 이 사장은 탄탄한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SK온이 제조업 전반에 걸친 깊은 이해도를 지닌 이 사장을 앞세워 확장 기조에서 변화를 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사장은 1967년생으로 지주사 SK의 포트폴리오3실장, 투자2센터장을 거쳐 2019년 SK머티리얼즈 수장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그룹 내 대표 제조·소재 전문가로서 역량을 쌓았다. 2023년에는 SK실트론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고 올해 말 인사에서 SK온 각자대표이사에 선임됐다.
기존 이석희 대표이사 사장도 인텔에서 11년 동안 재직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공학과 교수를 거쳐 SK하이닉스에 전무로 영입돼 미래기술연구원장, D램개발사업부문장, 사업총괄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역임한 ‘글로벌 제조업 전문가’로 평가된다.
SK온이 과거 미국 및 헝가리 공장의 가동 초기 수율(생산품 가운데 양품 비율) 관리에 애를 먹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정성’에 방점이 찍힌 셈이다. SK온은 제조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각자대표 2인이 선임됨에 따라 향후 사업 운영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SK온은 “이 사장은 제조업 및 소재산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배터리 사업 제조 및 운영 전반을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재무 안정성 커지고 투자부담 줄이고, IPO 접은 SK온 흑자전환만 남았다
SK온은 일련의 지배구조 재편 과정을 통해 재무 안정성을 일정 수준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연간 10조 원 안팎의 자본적지출(CAPEX)을 진행하면서 가중됐던 재무 부담을 소폭 덜어낸 셈이다.
SK온은 11월1일로 완료된 SK엔무브 흡수합병을 통해 자본 1조7천억 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 8천억 원가량의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포드와 공동 운영했던 합작법인 블루오벌SK 체제를 종결하는 자체적 구조 개편도 재무 건전성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SK온은 내년 1분기 말까지 블루오벌SK 청산을 통해 테네시 주 공장을 운영한다. 포드는 켄터키 주에 위치한 공장을 소유한다.
이를 통해 블루오벌SK가 보유하고 있던 대여금 11조 원 가운데 절반인 5조5천억 원 수준의 부채감축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SK온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20조9천억 원에서 15조 원가량으로 감소하고 현재 200% 수준의 부채비율도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공개(IPO)를 잠정적으로 철회했지만 동시에 연간 10조 원에 이르렀던 투자규모를 올해 6조 원, 내년에는 2조 원 수준까지 점차 줄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기차 수요 정체로 시장 상황이 악화했고 이에 확실한 재원 마련 방안이 사라진 만큼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재무 부담을 덜고 IPO 변수에서도 벗어난 현재 시점에서 이용욱 사장에게 남은 최대 과제는 배터리 사업의 흑자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부문이 분사해 출범한 SK온은 여전히 연간 영업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SK온 배터리사업의 영업이익 추이를 보면 출범 이듬해인 2022년 1조727억 원, 2023년 5818억 원, 지난해 1조1270억 원이다. 올해도 3분기 누적 영업손실 4907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용욱 사장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로의 전환을 가속화해 흑자전환을 도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및 수익성 개선 비책인 셈이다.
앞서 9월 SK온은 미국 재생에너지기업과 내년부터 4년간 최대 7.2GWh(기가와트시) 규모의 ESS용 리튬인산철(LFP)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북미 ESS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향후 미국 현지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로 전환해 현지 수요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SK온은 “45GWh 규모의 (블루오벌SK의) 테네시 공장에서 포드 등 다양한 고객사의 전기차 및 ESS용 배터리 공급을 추진해 수익성 중심의 내실화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