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 투자·출자 기관으로 정체성 확장 완료, 황기연 현 정부 생산적 금융 지원 속도 낸다
윤휘종 기자 yhj@c-journal.co.kr2025-12-10 08:42:17
황기연 한국수출입은행장이 11월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 기후환경협력 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씨저널] 이재명 정부가 ‘생산적 금융’ 대전환과 ‘실용적 에너지믹스’를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우면서 두 정책의 달성을 위한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의 역할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한국수출입은행법(수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은이 단순 대출·보증 기관을 넘어 벤처·전략산업에 직접 자본을 공급하는 ‘투자 은행’으로 확장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올해 11월 취임한 황기연 수출입은행장은 이 같은 변화를 조직 재정비의 기회로 삼아 수은의 조직과 기능을 미래 전략산업 금융과 디지털 전환 중심으로 고도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 이재명 정부 금융 정책에서 커지는 수은의 역할
이재명 정부는 금융의 중심축을 부동산 담보·가계대출에서 첨단·벤처기업과 지역 경제로 옮기는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위해 부동산 중심 여신에서 첨단·벤처로, 예대마진 중심에서 자본시장 투자로, 수도권 중심에서 지방으로 옮기는 ‘3대 전환’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러한 정책 방향 속에서 정부는 국책은행, 특히 수은을 향해 ‘전략산업과 미래산업의 선제적 투자자’로 역할을 재정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적 에너지믹스’ 에너지 정책에서도 수은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실용적 에너지믹스 정책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확대하면서도 기존 원전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안전성 검증 범위 내에서 수명 연장과 수출을 병행하는 정책이다.
수은은 이러한 정부 정책에 발맞추기 위해 2030년까지 ESG 여신 220조 원 공급, 200억 달러 규모의 ESG 채권 발행 등의 중장기 목표를 설정하고 친환경·탄소중립 금융 비중을 꾸준히 늘려왔다. 또한 실제 사업 측면에서도 중동 태양광, 해외 해상풍력, 친환경 선박 및 수소·CCUS 프로젝트 등 글로벌 친환경 인프라에 대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보증 지원을 확대하며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은은 원전 분야에도 손을 놓지는 않고 있다 원전 연료·부품 공급망 금융 제공, 해외 원전 수출 프로젝트 참여 등을 통해 정부의 원전 활용·수출 전략과 연계된 에너지믹스 정책의 금융 축을 담당하고 있다.
◆ 수은법 개정, 공급망·벤처까지 여는 ‘투자·출자 은행’으로의 확장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수은법 개정안은 수은의 기능을 대출·보증 중심에서 벤처·전략산업에 직접 자본을 대는 투자·출자 기관으로 확장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그동안 대출·보증과 연계된 경우에만 허용됐던 법인 출자를 대출·보증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렇게 되면 수은은 그동안 진행해왔던 소극적 투자에서 벗어나 초기 단계 혁신기업이나 핵심 인프라 프로젝트에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대출 관계가 없으면 아무리 유망한 기업이라도 수은이 먼저 투자할 수가 없었다.
또한 이번 개정안을 통해 수은이 공급망안정화기금(SCRF)에 직접 출연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수은이 위험성이 높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핵심광물·물류·인프라에 초저리 대출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간접투자 측면에서도 수은이 벤처투자조합, 신기술 사업투자조합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범위가 넓어지면서 수은의 벤처·딥테크·신기술 분야 모험자본 공급 능력이 크게 강화됐다.
다만 한쪽에서는 수은의 역할변화 속에서 위험요인도 놓치지 말고 살펴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투자 기회가 확대되는 만큼 국책은행으로서의 책임과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위험·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확대와 전략산업 중심 투자는 투자 대상의 재정건전성 리스크와 정치·외교 변수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동반한다”며 “수은이 국책은행인 만큼 수은의 손실은 국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두 번째 ‘내부 출신’ 황기연 행장, 이재명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금융 얹는다
2025년 11월 취임한 황기연 행장은 1990년 입행 후 기획부장, 남북협력본부장 등을 거친 조직 기획의 전문가다. 윤희성 전 행장에 이은 두 번째 내부 출신 행장이기도 하다.
황 행장은 취임사에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생산적 금융을 통한 통상 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AI·반도체·바이오·방산 등 미래 전략산업과 대미 투자사업에 대한 금융지원, 공급망안정화기금 활용 확대 등을 핵심 키워드로 언급했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AI 대전환’ 기조에 맞춰 피지컬 AI 인프라 구축, 디지털 인프라 프로젝트 지원 등에 금융을 연계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정책금융과 디지털·산업정책을 한 축으로 묶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황 행장은 취임사에서 “AI 대전환을 위한 주요 산업분야의 피지컬 AI 도입과 관련 인프라를 만드는 것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