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괴롭혀 온 '매각 2제' 박상진은 풀어낼까, HMM은 '노란불' KDB생명은 '일단 멈춤'
윤휘종 기자 yhj@c-journal.co.kr 2025-12-10 08:42:08
산업은행 괴롭혀 온 '매각 2제' 박상진은 풀어낼까, HMM은 '노란불' KDB생명은 '일단 멈춤'
박상진 KDB산업은행 회장은 산업은행 최고의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다. 9월 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의 앞에는 HMM 매각과 KDB생명의 정상화라는 과제가 놓여있다.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기아그룹,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모두 산업은행의 관리를 거쳐간 민간 기업들이다. 박상진 KDB산업은행 회장이 30년 동안 산업은행에서 태스크포스(TF)를 맡아 관리해 온 기업들이기도 하다.

그가 맡아온 태스크포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상진 회장은 산업은행 최고의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다. 전임 강석훈 회장 체제에서 결국 매각에 성공하지 못한 국적 대형 컨테이너선사 HMM의 민영화와 10년 넘게 산업은행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려온 KDB생명의 정리가 박 회장의 핵심 과제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HMM은 공적자금 회수와 국적선사 경쟁력이라는 정책 과제가 함께 얽혀있고, KDB생명은 만성 부실과 반복된 매각 실패로 산은 체질을 악화시키는 부담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박 회장에게 HMM과 KDB생명 매각 성적표는 단순한 자산 정리의 결과물이 아니라, 향후 산은의 부산 이전 및 생산적 금융 전환 등 중장기 개편 논의 방향을 결정지을 정치·정책 시험대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 HMM 매각, 창 다시 열리고 ‘원매자’도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노란불’인 이유

HMM은 3분기 기준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각각 35.42%, 35.0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국영기업이다. 

HMM은 국적 원양 컨테이너선사라는 위상,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실적 회복, 그리고 이 실적회복에서 나오는 안정적 현금창출력을 자랑하는 회사다. 

반면 실적이 글로벌 경제 환경,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점, 적게는 6~7조 원에서 많게는 10조 원을 넘길 수도 있는 잠재 인수가 등은 매각을 까다롭게 만드는 요인이다. 

기업의 펀더멘털은 매우 견조하지만 시기와 정책 등에 따라서 기업 가치가 요동칠 수 있는  구조다. HMM 매각이 매물의 매력과 비교해 매우 ‘고난도’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박상진 회장은 취임 전 내정자 시절부터 “HMM의 민영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하면서 취임 후 HMM 매각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문제는 ‘정책’이 도와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HMM 부산 이전은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해양수도 부산’의 중요 내용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HMM 노조가 HMM의 부산 이전에 반발하면서 노사갈등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HMM 매각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사무금융노조 HMM지부 육상노동조합은 4일 용산 대통령실 맞은편에서 ‘본사 강제 이전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HMM 육상노조는 기자회견에서 “본사 강제 이전을 강력히 규탄하며 노동자의 생존권 보호를 촉구하고자 한다”며 “정부와 대주주가 노동조합과의 협의 없이 본사 이전 절차를 강행한다면 지체 없이 총파업 태세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매수 희망자로 거론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림그룹과의 매각 협상 결렬 이후 1년 넘게 공회전했던 HMM 매각은 2025년 9월 포스코그룹이 회계·전략 자문단을 꾸려 사업성 검토에 착수하면서 다시 가시권으로 들어왔다. 2023년 불발됐던 HMM 인수전에 참여했던 동원그룹 역시 최근 검토 조직을 꾸려 HMM 인수와 관련해 내부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HMM 인수와 관련해 커다란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회장은 2023년 한양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HMM 인수는 꿈의 정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포스코그룹 역시 강력한 매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언급되고 있는 매수 후보자 가운데 가장 현금동원력이 강력할 뿐 아니라 사업적 시너지가 높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포스코그룹이 HMM을 인수한다면 연간 물류비 절감과 원료 조달 안정성, 철강·2차전지 소재와 해운을 묶는 밸류체인 완성이라는 여러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라며 “국내 해운업을 확실히 끌고갈 강력한 매수자를 원하는 정부의 입장과도 방향이 같기 때문에 포스코그룹은 산업·정책 측면 양쪽에서 매우 유리한 후보자”라고 말했다.

◆ 10년째 발목 잡힌 ‘아픈 손가락’ KDB생명, 박상진 어떻게 처리할까

KDB생명은 2010년 산은이 인수한 이후 10년 넘게 산은의 대표적인 ‘아픈 손가락’으로 불려온 기업이다. 2014년 이후 무려 다섯 번의 매각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히 2023년 진행됐던 다섯 번째 매각 시도에서에는 하나금융지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기대가 커지기도 했지만 실사 후 인수를 포기하면서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하나금융지주가 당시 인수를 포기한 이유는 IFRS17 도입 이후 급격히 악화된 자본 건전성과 추가 자본투입 부담 등이다.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2025년 3분기 보고서 기준 KDB생명의 자본총계는 약 –1017억 원으로 자본잠식률은 120.4%,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 지급여력비율(K-ICS 비율) 역시 상반기 기준 43.4%로 법정 기준치인 100%에 크게 미달한다. 현재 매각에 나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닌 셈이다.

산업은행은 11월 515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하며 KDB생명을 살리기 위한 ‘긴급 수혈’에 나섰다.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KDB생명의 지급여력비율은 83.3%로 급등한다. 

문제는 산업은행의 돈이 ‘공적자금’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공적자금에는 반드시 ‘회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산업은행이 KDB생명의 숨을 붙여 놓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매각 협상에서 이 금액 이상을 회수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만들게 된 셈이다.

산업은행은 단기 매각 대신 대규모 자본 확충과 체질 개선을 통해 KDB생명을 정상화한 뒤 중장기적으로 재매각을 추진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KDB생명은 이를 위해 요양서비스 등 고령친화 서비스와 연계한 신사업을 확대하며 수익원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보험 영업력·채널 경쟁력·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 KDB생명이 대형 생보사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는 점, 시장 포화로 신계약 성장 여력이 제한적이라는 점 등을 살피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체질 개선이 실제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회의적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 박상진의 매각 성적표, 산은의 역할 재정의에 던지는 신뢰의 가늠쇠

HMM과 KDB생명의 매각, 혹은 정상화는 단순히 두 기업의 운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산업은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그동안 산업은행이 국가 전략 산업이나 미래 산업에 대한 발전적 투자보다는 부실 기업의 금전적 지원 등의 역할에 머물고 있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재호 더희망금융포럼 공동대표는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산업은행이 계속해서 전통적인 산업, 대기업 중심의 자금지원에만 머물 경우, 금융이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라며 “경제의 구조가 다층화되고, 산업간 다양한 융합·결합이 자유로워진 디지털 시대에 정책금융도 역동적인 미래산업 생태계 창출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상진 회장 체제에서 HMM 민영화가 시장의 신뢰를 얻는 방식으로 성공하고 KDB생명의 회생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면 그동한 꾸준히 산업은행에 제기되어 온 대규모 부실기업에 대한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 낮은 회수율 등의 문제점이 개선됐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시장에 심어줄 수 있다. 

현재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생산적 금융 전환 등 산업은행의 미래 개편 논의에도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막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HMM 매각이 또 한 번 실패하고 KDB생명의 부실도 계속해서 산업은행이 메꿔야하는 구조가 고착화된다면 산업은행을 향한 시장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HMM 매각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수익성 좋은 자산은 헐값에 매각하고 만성 부실은 계속 떠안고 간다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HMM과 KDB생명의 미래는 산업은행이 고위험 구조조정 자산을 떠안는 마지막 보루로 남을 것인지, 국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생산적 금융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것인지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
이 기사가 어땠나요?

많이 본 기사

뉴 CEO 프로파일

뉴 채널 WHO

crownCEO UP & D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