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반도체 수직계열화 위해 SK실트론 필요하지만 문제는 돈, 박정원 위기 트라우마 극복했나
조장우 기자 jjw@c-journal.co.kr2025-11-28 08:41:03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면서 반도체 사업에서 수직계열화를 이루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서 수직계열화를 이루는데 속도를 더하고 있다.
박 회장은 두산테스나에 이어 글로벌 3위 규모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두산의 SK실트론 인수 배경, 기존 반도체사업 시너지와 새 수익발판 마련
박정원 회장이 두산을 통해 인수하려는 대상은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약 70%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약 29%는 인수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의 자회사 두산로보틱스 지분을 담보(PRS)로 통해 약 7천억 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은 올해 상반기 기준 두산로보틱스 지분을 약 68% 보유 중인데, 7천억 원 규모는 약 15%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영권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끌어오려는 것으로 읽힌다.
두산의 올해 상반기 별도기준 유동자산 규모는 2조1600억 원, 현금성 자산은 1조2천억 원 수준이다.
이에 따라 두산로보틱스 지분을 담보로 추진한 금액을 합하면 2조 원 규모의 인수자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재계에 따르면 현재 예비입찰 뒤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와 두산그룹의 양자대결로 SK실트론 인수구도가 좁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원 회장이 두산의 반도체 사업에서 수직계열화에 나서려는 것은 반도체 후공정을 맡고 있는 두산테스나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이 큰 이유로 꼽힌다.
SK실트론은 반도체 웨이퍼 시장에서 과점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회사를 인수하면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안정적 사업구조를 구축함과 동시에 최근 인공지능 붐으로 성장하는 반도체 성장에 올라탈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재계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이 매각대상에서 제외된 만큼 추후 SK그룹과 연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기대도 품고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SK실트론은 SK그룹 반도체 계열사 SK하이닉스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마지막으로 두산그룹이 두산 전자BG와 두산에너빌리티 등 성장성 높은 사업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지만 아직 이들의 수익기여도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수익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유도 인수에 나선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두산그룹은 그동안 주로 현금 창출력을 건설기계업체 두산밥캣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캐시카우'가 필요한 상황이다.
◆ 박정원, 두산그룹 위기 경험 '트라우마' 극복했나
두산그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주력사업을 바꾸면서 체질 변화를 이뤄왔지만, 그 과정에서 그룹전체가 흔들릴 뻔한 위기를 겪은 트라우마가 있다.
두산그룹은 본래 OB맥주와 한국네슬레 등 소비재 사업도 꾸려왔으나, 1991년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이 발생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경북 구미시 두산전자 공장에서 페놀 원액이 유출돼 낙동강이 오염된 사건을 일컫는다. 박용곤 당시 두산그룹 회장은 페놀사건 한 달 만인 1991년 4월에 모든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의 여파는 길게 이어졌다.
두산그룹은 1996년부터 생존을 위해 소비재 위주의 사업구조를 중공업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천명하고 순차적으로 사업을 정리했다. 1996년 한국네슬레 지분을 매각했고 1997년 11월에는 OB맥주 음료사업을 매각했다.
그 뒤 2000년 12월에는 한국중공업(현재 두산에너빌리티) 경영권을 인수한 뒤 2001년 3월 두산중공업으로 회사이름을 변경했다. 2005년에는 두산중공업을 통해 대우종합기계(현재 HD현대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면서 '종합 인프라지원사업 그룹'으로 거듭났다.
두산그룹의 중공업 중심의 사업구조 재편은 2007년 밥캣 인수로 정점을 찍는다. 당시 두산인프라코어가 미국 잉거솔랜드로부터 밥캣 등 3개 사업부문을 49억 달러(한화 약 5조 원)이라는 큰 금액에 사들였다.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차입매수 방식의 인수가 재앙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인수직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로 2008년 두산인프라코어의 총차입금은 6조982억 원으로 밥캣을 인수하기 전 1조2864억 원보다 5배 가까이 증가하게 됐다. 부채비율도 급격히 높아지면서 2010년 526.5%로 최고치를 찍게 됐다.
2011년부터 미국 건설경기가 반등하면서 두산밥캣과 두산인프라코어의 실적은 크게 개선됐고, 두산밥캣은 효자 계열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밥캣 인수가 불러낸 유동성 위기는 두산그룹을 구조조정으로 내모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박정원 회장으로서는 두산그룹의 새로운 인수합병을 하면서 또다시 이런 위기를 겪을지 모른다는 트라우마가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이 이번 SK실트론 인수합병을 진행하면서 두산로보틱스의 지분 15%에 해당하는 부분만 담보로 잡아 경영권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수적으로 이끌어가는 이유도 이런 과거 두산그룹의 아픔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박정원 회장의 SK실트론 인수합병 추진이 두산그룹 재도약의 밑거름을 만들게 될지, 아니면 트라우마를 재현하는 악순환을 만들게 될지 시장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씨저널과 통화에서 "SK실트론 인수 딜과 관련해서는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제한적이다"며 "추후 공식적으로 알릴 사안이 나오면 공시 등의 경로를 통해 알릴 것이다"고 말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