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풍산 회장은 미국 국적인 장남의 승계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외국인의 방위산업체 지분 또는 경영권 취득에는 엄격한 법적 규제가 적용된다.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풍산은 크게 봤을 때 신동(구리) 사업과 방산(방위산업) 사업 등 두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풍산의 지분구조를 보면 지주회사인 풍산홀딩스가 38.00%로 최대주주다. 이어 전문경영인들인 박우동 부회장, 손신명 부사장, 황세영 부사장, 서정국 부사장 등이 소량(도합 0.02%)을 들고 있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38.02%다.
지주회사인 풍산홀딩스는 오너인 류진 회장이 37.61%로 최대주주다. 이어 부인인 헬렌 노(한국명 노혜경)씨 5.41%, 딸인 류성왜씨 3.25%, 아들인 로이스 류(한국명 류성곤) 부사장 2.43% 순이다.
그 외 전문경영인 4명이 소량(도합 약 0.05%)을 들고 있으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48.76%다.
류진 회장의 아들인 류 부사장은 풍산의 미국 자회사 PMX 인더스트리(PMX Industries)에서 일하고 있다. 딸 류성왜씨 역시 풍산 미국 자회사인 PMC 애뮤니션(PMC Ammunition)에서 근무한다.
풍산은 오너 3세로의 지분 및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매우 더디다고 평가받는다. 오너 2세인 류진 회장(1958년생)의 나이가 60대 후반임을 고려할 때 승계 계획이 빠르게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풍산의 후계 승계에는 다른 기업과는 다른 특별한 문제가 있다. 바로 류 회장 장남의 국적과 관련된 문제다.
◆ 국적 논란으로 류진 아들 승계 가시밭길
류진 회장의 부인인 노씨와 아들인 류 부사장은 각각 2000년, 2010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부사장은 1993년생으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이어 스탠퍼드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뒤 미국 로펌인 밀뱅크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다.
2024년 4월 풍산 미국법인인 PMX 인더스트리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구리와 구리합금 가공 사업을 한다.
류 부사장의 국적 포기는 병역기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병역법상 복수국적자인 남성이 국적 이탈신고를 할 수 있는 기한은 만 18세가 되는 연도의 3월31일로 정해져 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국적을 이탈하려면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류 부사장은 만 17세에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류 부사장의 국적이 문제가 되는 것은 풍산이 방산업체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또는 외국법인이 방위산업체의 지분을 취득하거나 CEO 등 주요 임원에 선임되려면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반드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허가 신청을 받으면 전문위원회 등을 통해 국가안보 위해성 심사 등 심의를 실시하고 국방부 장관과의 협의도 거치는데, 그 결과에 따라 승인을 거부할 수 있다.
방위산업체의 경영권이 바뀌는 지분 매매의 경우에는 방위사업청의 보안측정 심의를 거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만약 지분 및 경영권 취득에 성공한다고 해도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데 난관이 뒤따른다. 외국인이 경영상 지배권을 가진 업체가 국가 전략무기사업에 참여하려면 방위산업법에 의해 방위사업청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풍산과 같은 방산업체의 경영에 외국인이 참여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승인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류 부사장이 풍산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까지 장애물이 가득하다.
류 부사장이 병역의무가 사라지는 만 38세 이후 한국 국적 회복을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적 이탈 과정에서 병역기피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국적 회복이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사회적인 비난이 만만치 않다. 탄약, 포탄 등 핵심 무기 기술을 가지고 있는 풍산의 경영권을 외국인이 갖게 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국인의 방위산업체 지배에 관한 법적 규제가 방위산업체의 모회사나 지주회사에는 적용되지 않아 이를 우회할 수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모회사의 지배구조 변화가 방위산업체의 경영 지배권에 실질적인 변화를 미치는지는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풍산 관계자는 승계 계획에 대한 씨저널의 질문에 “알려진 내용이 없다”고 답했다.
◆ 류진은 누구?
류진 회장은 1958년 경북 안동에서 류찬우 풍산 창업주(1923~1999)의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류찬우 선대회장은 일본에서 무역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출자해 1968년 풍산을 세웠다.
풍산은 1988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고, 2008년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류진 회장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1982년 풍산에 입사해 1997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1999년 부친이 별세한 후 2000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2008년 지주회사 설립 후 풍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가 2025년 3월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현재 풍산 대표이사 자리만 유지하고 있다.
국내외 정·재계와 스포츠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마당발이자 ‘미국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 한국비철금속협회 회장,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고, 현재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장을 맡고 있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