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수 파마리서치 이사회 의장(가운데)이 2023년 12월6일 강릉과학일반산업단지에서 열린 파마리서치바이오 제2공장 착공식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파마리서치바이오>
[씨저널] 파마리서치 창업주인 정상수 이사회 의장은 1993년 파마리서치를 설립하고 2001년 법인 전환 후 대표이사를 맡았다. 하지만 2020년 3월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이에 따라 파마리서치는 오너 대표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다만 정 의장은 이사회 의장 자리는 그대로 유지했다. 그전까지 정 의장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해 왔다.
상장회사의 오너가 대표직을 맡지 않은 상태로 이사회 의장만 맡는 사례는 비교적 드물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지난 7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 2531개 중 오너(총수) 일가가 대표 겸직 없이 이사회 의장을 맡은 기업은 169개(6.7%)에 그쳤다.
반면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기업은 86%에 달했다.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는 경우는 4.2%였다.
정 의장과 같은 구도는 주로 IT기업에서 나타난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 김대일 펄어비스 이사회 의장,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이 대표적이다.
오너가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으로 전환하는 것은,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업무가 복잡해지면서 미시적인 부분에서 전문경영인의 경영역량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너는 세부 경영을 내려놓고 넓은 시각에서 회사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에 전념하면서, 경영진에 대한 감독·견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한다. 우선 오너가 미래 전략에 집중하면서 회사에 장기적인 비전이 공유되고, 전문경영인이 역량을 발휘하면서 경영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책임경영은 회피하면서 최고 결정기구인 이사회의 통제권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오너는 더 큰 영향력을 누리고 이사회는 오너에 종속된다는 부정적 평가도 존재한다.
◆ 정상수의 선택의 의미, 회사 성장과 승계 작업 주도
정상수 의장은 대표직 사임 당시 “경영 효율성 제고와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사회 의장으로서 자잘한 부분들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채 회사의 전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공격적으로 회사의 외형을 확대하는 역할에 전념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 의장이 이사회 의장직만 맡은 이후 파마리서치는 타법인 지분 인수나 투자유치 등 굵직굵직한 안건을 적잖게 처리했다.
미용 분야 의료기기 업체 메디코슨(2021년 11월), 동물의약품 업체 플루토(2022년 8월), 제약회사 씨티씨바이오(2023년 3월) 등의 지분을 인수했고, 2021년 11월에는 자회사 파마리서치바이오가 발행한 3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취득하기도 했다.
또 2024년 9월에는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을 결정하며 CVC캐피탈로부터 2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정 의장이 이사회 의장만 맡는 선택을 한 것을 두고 인적분할과 지주사 전환을 통해 지배력 확대와 승계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 6월 ‘회사 분할 계획서 승인의 건’을 의결하며 인적분할을 추진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 계획은 주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다만 실제로는 정 의장이 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의 성장 전략과 지배력 확대 작업을 모두 고려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정 의장의 대표직 사임이 두 자녀의 빠른 승진을 위해 길을 터주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정 의장의 딸인 정유진 이사는 정 의장이 대표직을 사임한 시점인 2020년 파마리서치에 입사했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