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정몽구 사재 사회환원의 역사, 최태원 '노태우 비자금 주홍글씨' 놓고 어떻게 응답할까
윤휘종 기자 yhj@c-journal.co.kr 2025-10-22 07:10:04
이건희 정몽구 사재 사회환원의 역사, 최태원 '노태우 비자금 주홍글씨' 놓고 어떻게 응답할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6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 관련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씨저널]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하여 함구함으로써 이에 관한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ㆍ반윤리성ㆍ반도덕성이 현저하여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

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의 성격을 ‘반사회성ㆍ반윤리성ㆍ반도덕성이 현저하다’고 명확히 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원심에서 무려 1조4천억 원에 달했던 재산분할 금액이 대폭 깎일 가능성이 열린 최태원 회장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자금에 ‘불법원인급여’라는 명확한 꼬리표를 달았다는 점을 살피면, 법적 분쟁이 아니라 사회적 평판의 관점에서 최 회장에게 반드시 유리한 판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 딱지, 최태원 신념과 서사의 충돌

최태원 회장은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거듭 강조해왔다. 사회문제 해결과 기업의 역할, 지속가능한 가치 창출을 화두로 삼아온 리더가 결과적으로 ‘불법원인급여’ 위에 놓인 성장 서사와 마주하게 된 셈이다.

신념과 서사가 충돌하면서 최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상황에 놓여 있는만큼, 한쪽에서는 최 회장이 사재 출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K그룹에서 ‘불법원인급여’의 흔적을 지우는 가장 빠른 해법 중의 하나가 바로 그에 상응하는 규모의 사회환원이기 때문이다. 

1991년의 300억 원이 오늘날 1조 원이 넘는 가치로 성장했다고 본 2심의 판단을 감안하면, 만약 최 회장의 사재 출연이 이뤄질 경우 환원 규모 역시 상당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대법원이 이 자금의 법적 성질을 규정했을 뿐 이 자금의 기업 가치형성 기여 여부까지 단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살피면 300억 원에 대한 환원만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게시글에서 “우리가 이 소송에서 주목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노태우 일가의 부정축재 재산 300억 원”이라며 “이 돈은 국민의 땀과 눈물 위에 쌓인 '권력형 재산'이므로 국고로 반드시 환수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위기 국면에서 대기업 오너의 ‘사재 사회환원’ 역사, 삼성도 현대차도 같은 길

사재의 사회환원은 지금까지 여러차례 국내 대기업 오너 경영자들의 ‘위기 돌파’ 수단으로 사용돼왔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바로 2006년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8천억 원 사회환원 약속이다.

2005년 7월 MBC는 단독으로 입수한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공개하면서 1990년대 중후반 삼성그룹과 정치권·검찰 사이의 불법적 관계를 폭로했다. 소위 ‘삼성 X파일’로 불리는 사건이다. 

여기에 2005년 10월 선고된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1심 유죄 판결 등이 더해지면서 2005년 말~2006년 초 삼성그룹에 대한 민심이 최악으로 치닫자, 삼성그룹은 2006년 2월7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적 물의에 대해 사과하면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 8천억 원(이건희장학재단의 기존 기금 4천500억 원 포함)을 조건 없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2006년 5월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씨(2005년 사망)가 보유했던 삼성 계열사 지분과 이건희 회장 및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의 삼성전자 지분 등을 삼성이건희장학재단에 이전하고, 같은 해 8월 이 재단의 운영권을 교육부에 넘기면서 오너일가 재산의 사회환원을 완료했다. 

현대차그룹 오너일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적이 있다.

정몽구 당시 현대차그룹 회장은 횡령과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2006년 4월, 당시 기아차 사장이었던 정의선 현재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대국민 사과 및 사회공헌 방안’을 발표하면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당시 사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 전량을 조건 없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법원은 해당 혐의와 관련해 2007년 정몽구 회장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면서 이례적으로 사회공헌 약속을 강제하는 사회봉사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정몽구 회장은 2007년 사회공헌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현재 현대차정몽구재단)’을 설립하고 2011년까지 현대글로비스 지분 6500억 원, 2013년 이노션 지분 20% 등 총 8500억 원을 출연금 형태로 기부했다.

◆ ‘유익한 일’에 쓰겠다는 13년 전 이건희의 약속, 사망 후 ‘의료 공헌’으로 결실

재단이 아니라 의료공헌과 같은 특정 분야 집중하는 형태로 사회에 재산을 환원한 사례도 있다. 이번에도 삼성그룹 오너일가 이야기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4월 차명계좌를 통한 조세 포탈 등 혐의로 소위 ‘삼성특검’에게 기소되자, 삼성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차명 재산을 모두 실명으로 전환할 것, 그리고 실명 전환한 차명 재산 가운데 벌금과 누락된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것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했다.

이후로 이 '유익한 일' 약속과 관련해 현금 또는 주식 기부, 재단설립 등 여러 방안이 검토되다 실행이 지연됐고, 2014년 이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관련 논의가 중단됐다.

이 논의는 2020년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면서 다시 부활했다.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고인이 생전에 약속한 사회 환원 취지에 가장 부합한다’며 감염병 전담병원 및 연구에 7천억 원, 소아암·희귀질환 등 어린이 환자 지원에 3천억 원 등 모두 1조 원에 이르는 기부 계획을 발표했다.

13년 전 약속했던 사회 환원이 이건희 회장이 사망한 이후 실현된 셈이다.

◆ 최태원식 시나리오, 사회적기업 중심의 구조적 환원 가능성

재계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회적 기업’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만큼, 이 연장선상에서 사재의 사회환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회적기업의 출범과 성장을 돕는 재단을 만들거나, 사재를 활용해 직접 사회적기업을 설립하는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선택된다면 사회환원이 ‘기부’가 아닌 ‘비용 지출’의 형태가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최 회장이 줄곧 강조해왔던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임팩트’를 생산하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의 ‘불법원인급여’ 판결과 관련해 법조계에서도 여러 가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지만 법적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최 회장과 SK그룹의 이미지”라며 “최 회장의 신념이 지금까지 ‘공염불’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목소리에 무언가 답을 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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