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에서 외부세력 완전히 떼내려는 현정은, 사모펀드 H&Q에 3100억 상환 온힘
이승열 기자 wanggo@c-journal.co.kr2025-09-15 07:11:21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앞줄 가운데)이 2025년 8월8일 서울 연지동 사옥에서 열린 2025년 상반기 현대그룹 신입매니저 수료식에서 신입사원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현대그룹>
[씨저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023년 쉰들러(Schindler Holding AG) 등의 경영권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투자자를 영입했다.
당시 현 회장은 쉰들러의 주주대표소송에 최종 패소해 회사에 1700억 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했다. 이자까지 포함하면 지급액은 약 2900억 원에 이르렀다. 이 돈은 대부분 주식담보대출과 보유 주식 매각대금으로 마련했다.
또한 당시는 행동주의 펀드인 KCGI의 계열사인 KCGI자산운용이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주주행동을 펼치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당시 KCGI자산운용은 “일련의 소송 당사자가 회사의 상근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하는 것은 심각한 이해관계 충돌의 우려가 있다”면서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사내이사직 사퇴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현 회장은 쉰들러 소송 패소에 따른 주식담보대출을 저리의 다른 대출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국내 사모펀드인 H&Q코리아와 접촉했고, 이후 H&Q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게 됐다.
H&Q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배회사인 현대홀딩스컴퍼니가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3100억 원어치를 인수했다. RCPS와 CB가 2300억 원, EB가 800억 원어치이다. EB는 현대엘리베이터 보통주 약 190만 주(4.9%)를 교환 대상으로 발행됐다.
당시 H&Q 쪽은 오너인 현 회장과의 직접적인 거래라는 점에서 투자금 회수 가능성이 높고 최소 8.5%가 보장된 수익률도 만족스럽다고 판단해 투자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만약 현 회장이 투자금을 갚지 못한다면 현대홀딩스컴퍼니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H&Q가 인수한 RCPS와 CB에는 일정 시점 후 현대홀딩스컴퍼니가 되살 수 있는 콜옵션(매도청구권)이 부여돼 있다.
RCPS 콜옵션 행사기간은 1차와 2차로 나뉘는데, 1차는 2025년 11월부터 2026년 3월까지, 2차는 2026년 4월부터 2026년 10월까지다. 1차 금리가 8.5%, 2차 금리가 11%이므로 1차에 상환하는 것이 유리하다. CB에 대한 콜옵션도 2026년 11월부터 행사 가능한데, 금리는 11%다.
만약 현대홀딩스컴퍼니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H&Q는 투자금 상환 또는 보통주 전환 요구를 할 수 있다.
H&Q가 투자금 회수를 원한다면 현대홀딩스컴퍼니는 연복리 12%가 적용된 금액을 갚아야 한다. 주식 전환을 요구할 경우 H&Q는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 49.9%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현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50.1%가 된다.
업계에서는 현대홀딩스컴퍼니가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행사하지 않을 경우 경영권에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현 회장이 오랜 기간 쉰들러와 행동주의 펀드 등 외부세력에 시달렸던 만큼, H&Q가 경영권에 변수가 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별탈없이 H&Q에 상환을 완료한다면 현대그룹과 현대엘리베이터는 사모펀드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고, 현 회장은 외부 간섭을 최소화한 채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추진할 수 있다.
즉 현대그룹은 외부 세력을 떨쳐내고 현 회장 체제를 안정화하면서 현 회장의 맏딸인 정지이 전무로의 승계를 본격 준비할 수 있는 시점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자금이다. 현대그룹은 우선 1차 콜옵션 행사 기간 내에 RCPS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데, 1차 상환 금액은 약 1200억 원으로 추정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씨저널과 통화에서 “조기상환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 현정은은 H&Q 상환자금 어떻게 마련하나
현대그룹은 H&Q에 상환할 자금 마련 방안에 대해 고심해 왔다. 현재 배당 확대와 자산 매각 등 크게 두 가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현대그룹은 2023년부터 현대엘리베이터의 배당을 크게 확대했다. 2022년 500원이던 배당을 2023년 4천 원으로, 2024년에는 중간배당(1500원)을 포함해 5500원으로 올렸다.
이에 따라 배당성향은 2022년 25.39%에서 2023년 45.28%에서 2024년 108.40%로, 시가배당률은 2022년 1.77%에서 2023년 9.02%, 2024년 10.50%로 높아졌다. 총 배당액도 2022년 204억 원에서 2023년 2008억 원으로 증가했다.
배당 확대의 최대 수혜자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19.26%)인 현대홀딩스컴퍼니가 된다.
또한 현대그룹은 그룹의 연지동 사옥 매각도 추진 중이다. 2025년 8월 우선협상대상자로 볼트자산운용·하나증권 컨소시엄을 확정해, 현재 세부 실사 등이 진행 중이다. 매각대금은 약 4500억 원으로 알려졌는데, 정식 계약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번 매각은 현대그룹이 연지동 사옥의 마스터리스(전면 임차)를 유지하고 매각대금 일부(약 100억 원)를 보통주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해당 자산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확보하는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옥 매각이 당장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임시적인 조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엘리베이터 배당 확대와 사옥 매각을 통해 마련된 자금은 H&Q에서 빌린 자금을 상환하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될 전망이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