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 아직까지도 재계에서는 여러 말들이 오간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DB그룹을 이끌던 오너2세 김남호 회장(50세)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세워진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DB그룹은 표면상으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뒤 경화하고 있는 글로벌 무역전쟁과 급격한 산업구조 변동을 비롯한 경영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이 아들 김남호 명예회장과 반도체 파운드리 전문업체 DB하이텍의 처리를 두고 의견 차이가 나면서 갈등이 심화된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 DB하이텍 매각 추진 해프닝, 부자 갈등 표면화의 신호탄이었나
DB그룹이 2021년 8월 DB하이텍을 매각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당시 파운드리 시장이 호황을 맞아 DB하이텍의 시가총액은 2021년 8월12일 기준 2조8천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 기업가치를 4조~5조 원 대로 예상하기도 했다. 매각 대상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기업집단으로는 LX그룹, 현대자동차그룹, 삼성전자, LG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DB그룹은 즉각 공시를 통해 매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헤프닝으로 끝난 이 사건을 두고 그 뒤 재계에서는 부자 갈등이 표출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들 김남호 회장이 독단적으로 DB하이텍을 매각하려고 했고, 아버지 김준기 창업회장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격분했다는 것이다.
DB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김준기 창업회장은 이른바 ‘맨땅에 헤딩’으로 비유될 정도로 좌충우돌하면서 DB하이텍을 키워 궤도에 올린만큼 애정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준기 창업회장은 DB하이텍을 키울 당시 임원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며칠 동안 철야를 할 정도로 의욕적으로 일에 집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이 단순히 DB하이텍 매각 논란을 넘어서 부자 사이 갈등을 추측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 뒤 이뤄진 일련의 지분 경쟁 때문이었다.
2022년을 기점으로 김준기 창업회장이 비금융계열 최상단회사 DB아이앤씨의 지분을 늘려간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준기 창업회장은 2022년 DB김준기문화재단이 가지고 있던 DB아이앤씨 지분 4.3%를 인수해 지분율을 높였다.
2025년 7월 기준 DB아이앤씨 주요 주주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김남호 명예회장 16.83%, 김준기 창업회장 15.91%, 김주원 부회장 9.87%, 자사주 5.04%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22년은 지분 경쟁뿐만 아니라 후계구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생겨 여러 가지로 부자 사이 갈등이 시작된 시기로 꼽힌다.
김남호 명예회장의 누나인 김주원 DB그룹 부회장의 영향력이 확대된 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주원 부회장은 2022년 DB하이텍 미주법인장에서 DB그룹 부회장이 됐다. 미국에 국한됐던 김주원 부회장의 영향력이 DB그룹 전반으로 펼쳐진 것이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자녀로는 김주원 부회장과 김남호 명예회장이 있는 만큼 후계구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경영권 분쟁의 불씨로 남은 부자 갈등, 권력에는 핏줄도 없는가
DB그룹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제조업 계열사를 지배하는 DB아이앤씨와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DB손해보험으로 크게 계열이 나뉘어 있다.
김남호 명예회장이 두 계열 모두에서 개인 주주로는 최대 주주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완전히 그룹을 장악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버지 김준기 창업회장과 누나 김주원 부회장의 지분을 합치면 김남호 명예회장의 지분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DB아이앤씨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김남호 명예회장이 16.83%를 쥐고 있고, 김준기 창업회장이 15.91%, 김주원 DB그룹 부회장이 9.87%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DB손해보험의 지분구조에서는 김남호 명예회장이 9.01%를 들고 있고, 김준기 창업회장이 5.94%, 김주원 부회장이 3.15%, DB김준기문화재단이 5%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어느 계열에서든지 김남호 명예회장에게 불리한 지분구조를 띄고 있어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김준기 창업회장의 나이가 2025년 기준 만81세로 고령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 상속절차를 밟게 되면 김남호 명예회장에게 유리한 구조가 형성될 수도 있지만 유언과 같은 특수한 사항이 발생할 경우 복잡한 법률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바라봤다. 조장우 기자